대한민국 경제발전 기여 숨은 공로자

다시 태어나도 무역의 길을
종합상사 1호 삼성물산 트리폴리 지점장
사막에 난로를 처음으로 판매한 무역의 달인
후진양성 경인여대, 서울교대 무역실무 교수
다시 태어나도 무역의 길을
종합상사 1호 삼성물산 트리폴리 지점장
사막에 난로를 처음으로 판매한 무역의 달인
후진양성 경인여대, 서울교대 무역실무 교수
'주간무역' 연재 칼럼 '김달호의 무역이야기'
시조문학상과 석탑산업훈장 수훈의 시조시인
'상사맨은 노라고 말하지 않는다'저자

진주인이자 대한민국의 경제의 큰 기둥이었던 삼성, 금성, 효성의 창업주 이야기를 들으며 진주중·고등학교를 수학한 무역인 김달호

지리산 천왕봉과 덕천강변에서 1945년 광복의 기운으로 태어 난 무역인 김달호의 대표 아이콘은 ‘무역’이다.

그는 또 지리산과 남강, 진주를 대표하는 향토문학회인‘남강문학협회“서울지역 본부를 대표하고 있는 시조시인이자 수필가로 등단 활동하고 있는 문학인이기도 하다.

본지 경남연합신문의 문단인 ‘경연문단’에 작품을 기고해 오든 중, 그의 무역이력을 접하고 이를 고향인 진주인들에게 알리고자 탐방 취재를 기획했다.

어려서부터 ‘우리나라가 잘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라는 화두 속에 중고등학교를 마친 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사, 서강대 경제석사, 경희대 경제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재학 중 연세대학교 최고경제과정에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한 경제통으로 실무 정평이 나 있다.

우리나라 종합상사 1호인 삼성물산의 트리폴리 지점장을 지내면서 1979년 중동 사막에서 난로 720만 불을 파는 것을 시작으로 양말에서부터 선박까지 수많은 국내 제품을 수출하면서 연 수출 1억 달러 달성하는 이정표를 세웠으며, 이 공로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1980년 석탐산업훈장을 받은 무역의 달인이었다.

이러한 무역의 실력을 바탕으로 1983년 두성통상을 공동 창업하고 이어 1986년에는 두성전자산업(주)를 창업하여 자동렌치와 휴대폰 전원공급기기를 생산하여 ‘모토롤라’에 납품했다. 이러한 실적을 바탕으로 하여 1995년에는 1천 만 달러 수출탑을 받고 같은 해 ‘한국능률협회 상품수출부문 <세계화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연이어 한지코퍼레이션 회장과 국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KOTRA 수출전문위원으로 자문지원을 해 왔으며, 태양광 전문기업인 다쓰테크의 수출부문 고문으로 지구촌 전역을 누비며 무역인으로 평생을 헌신해 온 진주사람인 것이다.

또한, 후진양성을 위하여 1996년 경인여자대학교와 서울교대에서 무역실무 겸임교수를 맡아 후진양성에도 힘써왔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전문기관인 일산직업전문학교에서도 장애인들의 자활능력 배양을 위하여 자원봉사 회장직을 맡아 노력하여 노동부장관으로 부터의 장애인 봉사 감사패를 받기도 하는 등 무역을 통한 나라의 경제근간과 중소기업 지원,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활동, 장애인 자활지원 등 나라와 이 시대가 만든 필요충분조건의 사람인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 학예연구지에서 한글판과 영어판으로 발행되었던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한 숨은 공로자 편에 “사막에 난로를 판 사나이 김달호”가 게재되기도 했다.

▢류재주: 경제학 박사와 종합상사 무역인으로써, 사막에서 난로를 팔아 온 메마른 듯한 심성의 무역인이 문학 작가로 등단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김달호: “무역은 국제간에 이루어지는 상거래이므로 다른 문화와 늘 대면하게 되는데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폭넓은 독서와 외국어를 필요로 함에 따라 이를 통하여 수필가로 문단 등단의 계기가 되었다.

2002년 ‘허수아비 축제’ 「수필문학」의 추천으로 수필가로 등단하고 2007년 「문학공간」‘내 마음의 곳간은 늘 비어 있다’로 신인상을 받으며 시인 및 시조시인으로 등단하여 문학 작가로의 길을 걷고 있다.

2005년 서초문학상 수상, 한국문협,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과 한국시조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남강문학협회 서울본부의 임원으로 향토작가로써 지금까지 작품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류재주: 작가께서는 주로 무역과 수출에 관련한 경제서적을 몇 권 발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들에 대하여 소개를 좀 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달호: 평생을 같이 해 온 나의 아이콘이 ‘무역’이다. 내 삶에서 가장 큰 흔적이 무역이며, 그 흔적을 따라서 지금도 무역에 관련한 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를 토대로 십여년 전부터 <주간무역>에 칼럼 ‘김달호의 무역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자신은 물론 이 나라를 위하여 무역의 길을 가고 싶다. 이는 돈과 재물을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을 수 있는 추억의 부자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희망사항을 모아 <다시 태어나도 무역의 이 길을>을 출판했다.

그리고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그 상대의 소식이 늘 궁금하고 기다려 진다. 나는 가끔 ‘무역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일을 하라‘고 말한다. 하나의 제품이 시장에 진입하는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열정이 녹아 있다. 일종의 깊은 관심이다. 연인의 편지를 기다리듯이 상대의 편지를 기다리는 자세로 메일을 기다리며 일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을 수도 있지만 비즈니스에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더 많은 성과를 얻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아가 팀원간의 유기적인 협조가 더 좋은 시너지 효과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주제로 <수출과 사랑에 빠져라>를 출판했다.

또 태어나서 부터 활발하게 사는 기간을 삼등분하여 나는 10년을 배우고, 그 다음 10년은 해 보고 싶은 일을 하고, 마지막 10년은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1975년 처음 <상사맨은 노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는 책을 낼 때의 변이었다. 첫 책이 배운 것을 정리한 책이라면 <김달호의 무역이야기> 그리고<즐기는 수출 돈 버는 무역>은 가장 해 보고 싶었던 일인 수출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과 깨닫게 된 것들인 무역인 40년의 실전을 정리한 책이다.

▢류재주: 작가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평생을 무역인으로, 후진양성을 위하여 대학교수로도 봉직하셨고, 직업훈련을 통한 장애인 봉사를 해 오셨습니다. 또 대한민국 정부의 파견으로 중미 니콰라카와 코스타리카에서 국제 지식봉사활동을 5년여 동안 해 오셨습니다. 2013년에는 세계시인대회에도 참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시조시인 자격으로 “시조영화 다큐메타리” 촬영을 진주와 산청 등지에서 하셨다고 했는데 그에 대한 활동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김달호: 국제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하여 영문 시조저널의 웨인 더 프레머리(Wayne Fremery) 교수를 시조저널의 김흥렬 이사장의 협력제안으로 시작되었는데, 영화의 주제는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이다. 푸른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지리산 들머리와 시조문학관이 있는 진주가 적격이라는 판단에 따라 진주와 덕천강, 산청 백운동계곡, 충남 등지를 배경으로 하는 시조타큐멘티리 영화이다.

시조는 약 700여년을 이어 온 우리나라 고유의 문학장르이며, 세계만방에 널리 펼쳐지는 모습이 시조다큐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시조 영화다큐 촬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조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가 되기 위해서는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 한국시조문학관이 있는 진주인이 중심이 되고 경남연합신문이 경남의 대표적 언론으로써 앞장서 주기를 간곡히 당부드린다.

편집·정리 편집국장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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