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바로알기-12

우장춘 박사는 씨 없는 수박을 우리나라에 널리 알린 사람이지 그것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다. 씨 없는 수박의 발명자는 일본인 기하라 히토시(木原均) 이다. 우장춘 박사와 친밀한 교류를 나누었던 교토제국대학 교수이다.

기하라 히토시가 씨 없는 수박을 발명한 것은 1943년 무렵이다. 그 내용을 <3배체를 이용한 무종자 수박의 연구>라는 논문으로 발표한 것은 1947년이며, 우장춘이 한국에 씨 없는 수박을 널리 알린 것은 우장춘이 일본에서 한국에 귀국한 뒤인 1953년 무렵이다. 그런데 어째서 우장춘 하면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수박하면 ‘우장춘’을 떠올릴 만큼 씨 없는 수박이 우장춘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것일까?

우장춘의 아버지 우범선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관여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당시 조선인 훈련대 제2대대장인 군인이었다. 시해사건 후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우장춘이 여섯 살 때 아버지 우범선은 일본으로 망명한 고영근(황국협회 부회장과 만민공동회 회장)과 그의 하수인 노윤명에 의해 피살되었다.

우장춘은 일본에서 태어나 1919년 도쿄제국대학 농학부를 졸업히고 1936년 농학박사 학위를 받고 농림성 농사시험소 등에서 활동하다 1950년 3월 나이 53세에 한국에 정착했다.

우장춘의 한국 귀국은 그의 역량과 재능을 알아본 국내 몇몇 농학 인사들의 제안과 설득의 결과였다. 귀국 후 우장춘은 육종사업과 후진양성 두 가지에 몰두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그에게 농림부장관 자리를 제안했는데, 단호히 거절하기도 했다.

그의 연구 분야는 유전학의 한 분야인 ‘육종학’이었다. 적절한 예로 기히라 히토시의 씨 없는 수박을 소개하고, 1953년에는 직접 시범재배해 보여주기도 했다. 그 이후 우장춘의 연구활동 덕분에 한국은 일본으로부터의 ‘씨앗 독립’을 이룰 수 있었다. 지금 우리가 먹는 배추, 무, 감자, 감귤이 모두 그런 것들이다.

박사의 셋째 딸 가네다 요오코(金田葉子)의 수기에 “언니가 태어났을 무렵 아버지는 나팔꽃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나팔꽃을 여러 가지로 교배하여 기형을 만들고 있었으므로 언니가 태어나자 아버지는 혹시나 비정상적인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여 손가락과 발가락을 하나하나 세어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라고 기록하였다.

우장춘은 1959년 8월 10일 사망했으며, 한국정부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3일 전 ‘대한민국 문화포장’을 수여했다. 상을 받은 우장춘은 “고맙다, 나의 조국은....나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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