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설가 김용수

5. 악연의 사슬

1.

태완이가 산에 오른지 그럭저럭 30분이 되어 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오늘은 뱃속도 부글거리고 과음한 뒤끝이라 조금의 산길에도 숨이 턱에 닿아 무려 십 여 분이 더 걸렸다.

태완이는 우선 찬새미에서 목을 축이고 숨을 진정시킨 후 빨리 나무를 해 놓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찬새미로 곧장 찾아 간다.

찬새미는 얼마나 깊은 땅속에서 물이 나오는지 산이 말라 비틀어지는 가뭄에도, 산이 아예 물에 다 잠겨 버리는 장마에도 졸졸 나오는 물의 양은 1년 사시사철 일정하다.

더욱 좋은 것은 여름철이면 심장이 멎을 만큼 차갑고, 겨울이면 김이 무럭무럭 날 정도로 따뜻해진다.

그리고 오늘같이 더운 날에 물을 마시기 위하여 물이 떨어지는 대나무 대롱 끝에 입을 갖다 대면 입이나 얼굴 주변뿐만 아니라 온몸이 써늘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처음 물가에 도달할 때는 미역이라도 감고 싶지만 찬새미에서 우선 물을 마시고 헐떡이는 숨을 가다듬다 보면 어느새 몸이 식어 물에 몸을 담그기가 싫어질 정도가 된다.

찬새미는 물이 나오는 곳에 동네 어른들이 아이 손목 굵기의 30센티미터 정도되는 대나무를 반으로 잘라 대롱을 만들어 꽂아 두었고, 물은 대롱 끝에서 떨어지는데 떨어지는 곳에 조그마한 웅덩이를 파고 부근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돌조각으로 마치 샘을 만들 듯 물이 고이도록 만들었다.

오래 전 부터 동네사람들은 이곳을 찬새미라 부른다.

사람들은 고여 있는 물을 직접 떠서 마시거나 대나무 끝에 입이나 그릇을 대어 물을 받아 마시는데 고여 있는 물은 산삼이 녹아 있다고도 하고 뱀이 알을 까 놓았기 때문에 먹으면 큰일 난다고 겁을 주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먹는 물은 직접 받아서 먹고, 새미에 고여 있는 물로는 손이나 얼굴을 씻는데 사용한다.

태완이는 지게를 찬새미 옆에 벗어 놓고 지게 작대기의 아귀진 부분인 알구지를 윗세장에 걸쳐 지게를 세운 후 탕개 줄에 낫을 걸쳐 놓고 졸졸졸 소리를 내면서 흐르는 맑고 투명한 물을 손바닥으로 받아 몇 모금 마시고 옆에 있는 평평한 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차피 찬새미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어디라도 그늘이 드리워지지만 그래도 태완이는 간간이 내리는 볕을 피해 그늘을 골라 앉는다.

나무를 할 때는 바소고리를 벗겨 집에 두고 온다. 바소고리가 있으면 오히려 나무를 많이 싣지 못하기 때문이다.

태완이가 국민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아버지 지게를 사용하였으나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아버지와 체형이 확연히 달라졌으므로 아버지 지게를 쓰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중학교에 다닐 때는 불편해도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의 지게를 사용하였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농사를 짓기로 하면서 태완이는 자신의 몸에 맞도록 직접 이 지게를 만들었다.

태완이는 나무를 하러 갈 때면 자랑스러운 듯이 자신이 만든 지게를 지고 나가는데, 태완이가 동네사람들에게 이 지게를 자랑하고 다녔기 때문에 동네사람들은 태완이가 만든 지게를 대부분 잘 알고 있었다. 지게가 참 튼실하게 만들어졌다고 칭찬이라도 해 주면 태완이는 더욱 신나게 일을 하곤 했다.

원래 전통적인 탕개 줄은 볏짚을 꼬아 만들지만 태완이는 볏짚대신 가늘면서도 훨씬 질긴 나이롱 줄을 직접 꼬아 쓰기가 편하도록 만들었다.

나무를 하려면 조그만 손도끼가 좋을 때도 있지만 태완이는 어젯 밤 너무 술을 많이 마셔 몸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낫으로 벨 수 있는 나무나 가져간다는 생각으로 집에서 나올 때 도끼는 두고 왔다. 잘 버려진 낫의 날 부분에서 시퍼런 빛이 난다.

태완이는 탕개 줄에 낫을 걸쳐 놓고 찬새미로 가서 대나무 대롱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에 손을 먼저 씻고 두 손바닥을 나란히 붙여 오목하게 만들어 물을 받아 마신다.

찬새미 물맛은 언제나 청량하다.

태완이는 신자와 헤어져 있는 기간 동안 신자의 꾸밈없고 우수에 젖은 듯 새초롬한 얼굴을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신자도 분명히 자신을 좋아하였으며 그러기 때문에 읍내 만화방에서 만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10리나 되는 먼 길을 굳이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집으로 왔으며 오는 길에 손을 잡아 달라고까지 한 것이 아닌가?

그러던 신자가 병식이의 입대를 핑계로 느닷없이 나타나 보란 듯이, 병식이와의 관계를 노골적으로 과시하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

신자에게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지 못한 바보 같은 자신의 행동을 탓하였다.

신자 앞에서 약골인 병식이를 흠씬 패서 코피라도 나도록 해야 하는데 그냥 보고만 있었던 자신이 더 미워졌다.

찬새미 물을 마시고 새미 옆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가다듬으면서 지난밤에 일어났던 일들을 돌이켜보니 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만약 지금 이 순간 신자든 병식이든 눈앞에 있다면 사생결단하고 끝장을 내 버릴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자신의 이런 생각이 밑바탕이 되어 어젯밤 얄궂은 꿈을 꾼 것 같다.

그런데 어젯밤 꿈자리에서 왜 병식이를 쏘지 않고 신자를 쏘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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