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소설가 김용수

5. 악연의 사슬

1.

꿈은 반대로 나타난다고 하니 신자를 쏜 것은 반대 현상이고 정말로 자신이 총을 들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쏘게 된다면 병식이를 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나무 사이로 언 듯 보이는 햇살이 너무 찬란한데 먼 산 너머로 한 무리 검은 구름이 찬새미 쪽으로 서서히 밀려온다.

오는 듯이 마는 듯이 흐르고 있는 구름은 도대체 급할 것이 없는 것 같은데 순식간에 세상을 어둑하게 만들어 버린다.

한바탕 소나기라도 내릴 것 같다.

소나기가 내려 우중충하고 답답한 가슴을 확 씻어 주었으면 좋겠다.

태완이는 새미 옆에 한 참을 멍하게 앉아 있다가 퍼뜩 정신이 든다.

빨리 나무를 하고 집으로 내려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주섬주섬 일어나 탕개 줄에 걸쳐 놓았던 낫을 집어 들고 옆에 있는 지게작대기를 잡다가 느닷없이 들고 있던 낫으로 지게의 끝부분인 새고자리를 냅다 후려친다.

새고자리는 지게의 몸통이면서 힘을 받치는 가장 기본적인 뼈대인 동바와 일체였고, 보통사람들은 동바를 가벼운 소나무로 만들지만 힘이 좋은 태완이는 튼튼한 지게를 만든다고 박달나무로 만들었으므로 그렇게 툭 친다고 해서 새고자리가 부러지지는 않는데 오늘따라 새고자리가 맥없이 툭 부러져 버린다.

정성들여 직접 만든 지게였으므로 아까운 생각도 들었지만 또 만들면 된다는 생각과 까짓 것 부러지면 어때 하는 생각이 교차된다.

새고자리 한쪽이 날아가면 나무를 실을 때 중심이 잡히지 않아 많이 싣지를 못할 뿐만 아니라 새고자리가 없어진 쪽으로 나무가 쏠려 나무를 지고 내려올 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다만 나무를 실을 때 새고자리 한쪽이 없다는 것을 감안하여 꾀스럽게 실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게를 한 쪽 어깨에만 걸친 채 뚜벅뚜벅 걷기 시작한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는지 찔레란 녀석들이 벌써 제멋대로 자라 이리저리 엉기면서 태완이의 얇은 바지를 뚫고 들어와 다리를 할퀴어 놓는다.

2.

찬새미에서 출발하여 한 5분쯤 올라 왔는가, 전에도 곧잘 나무를 하던 익숙한 곳에 도착하였다.

태완이는 지게를 내려놓으면서 나무하기 좋은 자리를 찾으려고 휘 한 바퀴 돌아보는데 뜻밖에도 언 듯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태완이는 설마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확인을 하는데 마치 짐승들의 보호색과 같이 풀숲과 어울려 쉽게 구분이 되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풀숲과는 다른 파란색 줄무늬가 든 누런 셔츠가 나무 이파리 사이로 언듯번듯 보이고 붉은 색 바지를 입은 것이, 사람이 분명하다.

태완이는 몇 걸음 더 올라가 지게 작대기로 나뭇가지를 헤치고 보자 다름 아닌 무명할매가 약초 보따리를 앞에 두고 앉아 손을 꼼지락 거리는데, 아마도 돈을 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완이는 이 깊은 산속에서 할매를 만나자 의외라는 생각에 앞서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오늘같이 신자에게 버림받고 마음이 허전한 날은 할매 품에 안겨 어리광이라도 부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한참 동안 할매를 보지 못하였다.

진주 공장에 다니는 기간 동안에는 당연히 할매를 못 보았지만 촌으로 내려 온 후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쏘다니느라 집에 있을 시간이 없었으므로 할매를 보지 못하였다.

“할매, 할매 아잉교?”

할매는 어디서 말소리가 나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다가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을 쳐들고 있는 태완이와 눈이 딱 마주친다.

“... ...”

“할매, 냅니더, 태완입니더.”

“태... 완이, 니가... 여기 어쩐 일이고...?”

할머니 얼굴에 갑자기 두려운 기색이 지나가면서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태완이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람과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눈빛은 막다른 골목에서 여우와 맞닥뜨린 토끼의 놀란 눈빛이다.

태완이는 할매의 눈빛에서 두려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비가 오지 않는 마른하늘에서 번쩍이는 섬광과 함께 마른번개가 내리친다.

천둥소리의 크기와 번갯불과 천둥 소리의 간격이 짧은 것으로 봐서 가까운 곳에서 번개가 친 것이라는 짐작을 한다.

할매는 공연히 딴전을 판다. “마른하늘에 왠 천둥 번개람...” 하지만 할매의 음성은 떨리고 있다. 태완이도 할매의 음성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챈다.

할매도 태완이가 자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는 것은 알고 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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