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정치학박사
전 주중국대사관 공사
통일지도자 아카데미 부원장

편안함에 젖어 위험이 닥치는 줄도 모르고 안주하는 것을 처마 밑의 제비와 참새에 비유하여 표현한 성어가 ‘연작처당’(燕雀處堂)이다. 1880년 여름 주일 중국대사관의 참찬 황준헌이 도쿄에 파견된 조선의 수신사 김홍집에게 건네준 책자 “私擬朝鮮策略”(사의조선책략, 내가 보는 조선책략)에 조선이 처한 상황을 압축 평가한 표현이 ‘연작처당’이었다. 당시 중국의 의도는 조선의 러시아 경사를 막기 위해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 하여 자강책을 도모하라는 내용이었지만 그 핵심은 중국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140년이 지난 오늘날 중국이 현대판 “조선책략”을 건네준다면 아마도 한미동맹을 비난하며 중국을 섬기라는 충고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선제적으로 한미동맹보다는 중국을 섬기고 있으면서 역으로 미국과 국민들이 눈치챌까봐 염려하는 것 같다. 한반도주변 환경과 내부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4강에 둘러싸여 정치외교적 압박을 받고 있는 형국이지만 국내적으로는 아직도 국제정세 시각이 부족하여 사회주의로의 발걸음을 위해 내부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금년 초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산된 이후 세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중국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지고 있고, 미국은 세계 리더역할에 상처를 받고 있는 가운데 미중 간 무역전쟁은 경제전쟁을 넘어 다면적인 충돌의 태세를 보이고 있다. 마침내 미국은 한국에 직접 반중 경제블록(경제번영네트워크 EPN)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지금 세계는 경제적으로 세계화가 후퇴하여 상품 유통과 투자의 흐름이 막히고 각국이 폐쇄주의와 포퓰리즘으로 치닫고 있어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세계질서에 새로운 변동이 예기되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한반도 주변에는 미국의 전략자산이 배치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고 북한내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살얼음판 같은 국제정세 속에서 세심한 정치외교력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정부는 세계정세의 추세와 달리 한가한 편이다. 지난 5월 20일 통일부는 천안함 폭침으로 인한 ‘5.24 대북제재 조치’ 10주년을 앞두고 그 실효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며, 남북관계의 공간을 확대하고 한반도 실질 평화확대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히며 ‘5.24 조치’의 해제를 예고하였다.

이는 ‘북한의 비핵화 없이는 제재해제 없다’는 미국과 세계의 경고에 정면으로 배치되지만 지난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한 만큼 관광 및 ‘퍼주기’ 남북교류에 다시 한 번 박차를 가하겠다는 속셈으로 비춰진다. 한편으로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대표의 의혹에 대하여도 ‘하나가 무너지면 전체가 무너진다’는 좌파들의 연대의식이 작용하여 의혹 뭉개기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이낙연 전 총리가 이 사건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고 관심과 입장을 표명했지만 이해찬 대표가 갑자기 ‘심각하게 검토할 부분은 아닌 것 같다’고 응수하고, 이어서 민주당은 ‘사실관계를 먼저 따져 봐야 한다’고 박자를 맞췄다.

이 외에도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는 최근 느닷없이 ‘한명숙 전 총리가 강압 수사와 사법 농단의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검찰과 법원이 명예를 걸고 스스로 진실을 밝히는 일에 즉시 착수하기 바란다고 검찰을 압박하였다. 추미애 법무장관도 ‘어제와 오늘의 검찰이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맞장구 쳤다. 또 문대통령은 5.18 진상조사를 촉구하였고, 국방부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으로 훈·포장을 받았던 군 인사들의 서훈을 추가 취소하기 위한 검증작업에 착수할 예정으로 있다. 이미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등에 따라 76명의 훈·포장과 표창을 취소한 바 있지만 또 한 차례 추가 검증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각본대로 좌파중심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여기저기서 베어 나오고 있다.

한편 야당의 허울을 쓴 미래통합당은 거대 여당의 폭주를 견제할 역할보다는 협력의 미명하에 야합할 가능성도 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미래한국당과의 합당은 중요하기 때문에 합당을 추진하고 있으나 미래한국당은 여당이 바라는 대로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며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래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김종인 씨의 자택을 찾아가 임기보장(내년3월까지)안을 제시하며 비대위원장을 맡아 달라 하고 있다.

이래저래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세계의 흐름을 보기는커녕 눈앞의 정세도 못 보고 있다. 우선의 편안함에 젖어 위험이 닥치는 줄 모르고 안주하면 어느덧 나라도 팔아먹을 수 있다. 이완용이 달리 나온 게 아니다. 미래통합당의 행태를 봐서는 아무래도 나라를 바로세우는 데 역할을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의혹마저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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