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정치학 박사
전 주중국대사관 공사
통일지도자 아카데미 부원장

판문점 선언(2018.4.23.)에 따라 남북협력의 상징으로 세워진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지난 616일 북한 김여정의 지시에 의해 폭파되었다. 꼭 그렇게 충격적인 행위를 해야만 했는지 등 방법론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이러한 행동이 충분한 대남통전전략의 계산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동조라도 하듯 좌파정부와 여당 측 인물들은 연일 해괴한 논리를 들이대며 북한의 행위를 아무 일 없는 듯, 오히려 향후 더 북한의 의사를 받들어야 될 것처럼, 이 정권의 대북정책이나 통일접근이 잘 진행되어 온 양, 앞 다투어 감싸고 있다. 정통 야당이라는 미래통합당도 북한을 자극하면 불이익이 돌아올까 우려되는지 비교적 조용한 편이다. 이쯤 되면 북측의 계산은 이미 성공을 거둔 셈이며, 향후 경거망동해선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보다 더한 짓을 해도 무방하리라는 정치적 계산도 나온다. 그러나 북한의 폭파 쇼에 즈음하여 미 트럼프 대통령이 실기하지 않고 타이밍을 맞춰 617일 전격적으로 대북제재를 1년 연장하는 행정명령을 내린 결정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영국의 정치사상가 이사야 벌린은 고대 그리스 우화를 토대로 세상 사람들을 두 가지 형태로 분류하였다. 모든 것을 하나의 핵심적인 비전에 관련시키는 부류를 고슴도치 형으로 보고, 서로 모순되더라도 다양한 목표를 추구하는 부류를 여우 형으로 분류하였다. 이에 따르면, 70여 년간 오로지 한반도 공산화를 목표로 민족통일을 주장하는 북한정권은 전형적인 고슴도치 형에 해당하며, 한국의 좌파정권도 반미와 민족통일만을 비전으로 외치며 내달려온 것으로 보아 고슴도치 형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인지는 모르나 좌파정부의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은 기본적으로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것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우선주의와 다르지 않다. 아직 국제정치적 영향권에서 못 벗어난 남북한이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를 무시하고 오로지 민족이란 에너지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북한이야 과거부터 해오던 주장이지만 국내 좌파정부는 핵을 머리에 이고서도 대북 퍼주기와 중국의 아량에 기대면서 민족주의에 매달려 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국제정세의 흐름에 무지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 현대사에서 민족을 강조한 대표적 인물이 김구였다. 임시정부시절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던 김구는 중일전쟁(1937.7)이후 국공합작을 추진했던 중국국민당 장제스(蔣介石)의 요청을 받아들여 좌익세력들과의 합작을 추진한 이후 좌우를 한데 묶어 민족이라는 틀 속에서 자주통일국가를 수립할 수 있다는 느슨한 착각에 빠졌다. 김일성이 스탈린에 의해 위성국 지도자로 선택되어 북한공산화를 위해 지령대로 움직이고 있는 데도 김일성을 설득하면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걸로 생각했던 김구의 모습은 민족을 사랑하는 순수성이야 존중되지만 국제정세의 흐름에 무지했다고 평하면 지나칠까? 김대중은 그를 순진한 민족주의자로 평가했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보편적 가치는 민족주의나 쇄국주의 기반위에서는 더 이상 추구되기 어렵다.

정권을 창출한 경험이 있는 북한의 통전전략의 핵심은 상대 정당에 공산당원을 침투시켜 당을 장악한 다음, 정당 간 통합을 추진하여 공산당 일당지배체제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통전전략의 공식에 따르면, 첫 단계는 국내 야당내부에 주사파 당원을 위장 침투시키거나 당내 불만세력을 꼬드겨 야당의 지도부를 은밀히 장악하는 것이다. 이미 장악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그 다음 단계는 장악된 지도부 주도하에 내각제를 선전하는 애드벌룬을 띄우면서 여타 핵심인사들에 적절히 한자리씩 줄 것을 밀약하면, 이들이 앞장서서 내각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통전전략이 성공하는 것이다. 내각제가 되면 야당세력들은 좌파정부 내 소수파로 전락하고, 다수파인 좌파정부와 북한노동당 정권이 연계하면 자연스레 큰 저항 없이 북한 중심의 통일을 위한 연방제로 가게 된다. 현재 정통야당이라는 미래통합당도 중도확장 논리를 앞세운 세력에 이미 장악되어 좌경적인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좌클릭하고 있다. 당내 누군가가 내각제 필요성을 선 듯 제안하면 정치 쇼를 한두 번하다가 바로 지지세로 돌아설 것 같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야당이 야당답고 잘못된 선동에는 날을 세워 저지해야 하나 그러지 못한 게 우려스럽다.

일제시대 에도 압제에 항거했던 독립정신이 있었다. 애국심으로 뭉친 새로운 자유우파 정당의 태동이 요구되는 시기이다. 깃발을 드는 선구자만 있으면 다시 뭉쳐 차기 대권을 지향할 수 있다. 시대적 요구나 결정은 깨어나는 국민들의 지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각성하여 뭉치면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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