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행-17

바보 온달은 평강공주와 결혼한 덕분에 출세한 것이 아니라, 뛰어난 무공을 세워 왕의 눈에 띈 덕분에 공주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려 때 유학자 김부식은 삼국사지에서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를 두 가지로 전하고 있다.

첫째 이야기는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평강왕) 때의 사람으로 저잣거리를 왕래하는 웃음거리가 되던 사람이다. 평강공주는 울기를 잘하여 왕이 공주에게 훗날 커서는 대장부의 아내가 될 수 없으니,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보내겠다고 희롱하였다. 16세가 되어 상부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니 공주가 말하기를 대왕께서 온달의 아내가 된다고 말씀을 하셨다.”하며 결혼을 거부하였다.

둘째 이야기는 봄철 33일 사냥하는 날 탁월한 사냥 실력을 올린 온달이 왕의 눈에 띄었다. 후주의 무제가 요동을 공격할 당시 왕과 함께 온달이 선봉장으로 나가 전공을 올림에 평원왕이 대형大兄을 삼았다는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는 두 가지의 설화다.

하나는 상부 고씨와 결혼을 거부함으로써 궁궐에서 쫒겨 나 온달을 찾아가서 결혼하는 부분과

다른 하나는 외적이 쳐들어오자 선봉에 서서 맹활약하여 평원왕이 사윗감으로 점찍은 나의 사위로 삼겠다.”고 한 말이다.

온달은 바보가 아니라 전장에서 무공을 세운 사람이다. 외모가 못생겼다는 표현은 이방인 또는 이단자를 묘사할 대 흔히 쓰는 표현이다. ‘처용이나 탈해의 표현도 같은 것이다. ‘대형이라는 벼슬은 고구려 관직에서 고위직에 해당된다. 왕이 대형을 삼았다는 것은 명문은 아닐지라도 귀족의 신분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온달은 평원왕이 왕권강화를 위해 등용한 신진세력의 무장이었다.

무장으로서 공을 세워 평강공주와 결혼하고 그 다음 왕인 영양왕 대에 이르기까지 왕의 강력한 지지자로 활약했던 인물이었음에 구세력인 명문귀족들의 눈에 곱게 보이지 않음에, 명문귀족들은 바보울보의 결혼이라고 비아냥거렸을 것이고, 두 사람의 파격적인 결혼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고, 사람들의 입으로 전하면서 흥밋거리 요소가 덧붙여졌다.

온달은 우스꽝스런 외모에 남루한 옷차림을 한 거렁뱅이로 한껏 격하되고, 공주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출세한 것으로 각색이 된 이야기다.

삼국사기에서 온달은 을파소, 박제상 등 충신들의 열전에 함께 묶여 있다.

김부식은 온달을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충신으로 인식이 되었다.

2001년 충북 단양에서 무덤으로 여겨지는 돌무더기가 발견되었는데, 지역사람들은 이를 온달 무덤, 또는 장군총으로 부르고 있다. 주변에는 온달이 전사한 아단성인 온달산성이 발굴되었다.

전북 김제에는 봉성 온씨鳳城 溫氏들의 집성촌이 있다.

봉성 온씨는 온달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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