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한국문인협회, 신서정문학회
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남강문학협회 감사

6.복수

2.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난다.

이장 목소리, 천씨 아저씨, 병식이 아버지와 봉식이 아버지 목소리, 그 외 웅얼웅얼하는 다수의 목소리속, 귀에 익은 소리들이 들린다. 사람들이 담장 너머 무명할매의 집에 몰려와서 무명할매를 부르고 찾고 있는 것 같다.

태완이 집과 무명할매의 집과는 담장을 하나 사이에 둔 바로 이웃집이다.

할매 집에는 사람이 거의 찾아오지 않지만 극히 이따금 누가 찾아오거나 무슨 특별한 음식을 하면 그 냄새가 태완이 집에 까지 넘어오므로 바로 알 수 있다.

태완이가 어렸을 때 태완이 엄마가 들일을 나가거나 손이 바쁜 날은 담장 너머로 무명할매를 불러 태완이를 넘겨주고, 태완이를 넘겨받은 무명할매는 태완이를 자기 손자인양 정성 들여 돌봐 주었다고 한다.

태완이는 이러한 무명할매가 친할매처럼 느껴져 어렸을 때 심심하면 곧잘 무명할매 집으로 놀러 가서 밥도 먹고, 또 아예 무명할매 집에서 할매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일도 잦았다.

사람 소리가 나자 태완이는 얼른 할매 집 쪽을 바라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태완이는 재빨리 뒤안의 헛간 쪽으로 달려가 숨는다.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들려온다.

마을 사람들이 할매 집을 샅샅이 뒤지고 돌아보면서 찾다가 할매가 보이지 않자 봉식이 아버지가 태완이 집 담장 너머 목을 길게 빼고는 할매를 찾는다.

할매, 무맹할매

봉식이 아버지는 무명할매를 부를 때 언제나 무맹할매라고 부른다. 봉식이는 병식이와 사촌이다.

즉 병식이 아버지와 봉식이 아버지는 친형제지간이며 봉식이 아버지가 형이다.

할매, 무맹할매...”

아무런 대답은 고사하고 인기척도 없자 봉식이 아버지는 느닷없이 태완이를 부른다.

태완아, 태완아

태완이는 긴장한 나머지 하마터면 대답을 할 뻔했다.

이장 영감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

좀 전까지 태완이가 보이는 것 같더니, 자슥 그새 또 어디 나갔나?”

하더니 그 스스로 목소리를 높여 태완이를 부른다.

봉식이 아버지는 할매 집으로 들어오면서 담장 너머에서 태완이가 손을 씻고 있는 모습을 설핏 본 것 같았지만 태완이의 반응이 없자 잘못 본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태완이는 헛간 구석에 평상을 만들기 위하여 쌓아 둔 마른 소나무와 장작더미 뒤에 쪼그리고 앉아 숨어 있다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잦아 드는 걸 보고 헛간 반대쪽에 오래되어 쓰지 않는 탈곡기 뒤에 말아 놓은 멍석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멍석 옆과 앞에는 탈곡기가 있고 그 탈곡기 위에 앉은뱅이 헌 책상이 놓여 있다. 그 외에도 잡다한 농기구와 이제는 안 쓰는 낡은 가재도구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어 멍석 위에 주저앉아 있어도 일부러 이곳으로 와서 세심하게 살펴보지 않는 한 발각될 염려는 없다.

태완이가 멍석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밖의 동정을 살피다가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그라지자 다시 몸이 떨려 오기 시작한다. 좀 전에 사람들이 있을 때는 바짝 긴장하여 몸이 떨리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사라지자 사시나무 떨 듯 떨려 온다.

떨려 오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진정은 커녕 점점 더 심하게 떨려 온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하여 담배를 찾아 물려다가 담배 불빛에 사람들이 몰려 올까 봐 이내 포기하고 담배를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내가 사람을 죽였다, 아니 내가 무명할매를 죽였다, 할매의 돈을 빼앗기 위해서 내가 할매를 죽였다.

나는 살인자다, 강도살인범이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사람들이 할매를 찾으려고 산으로 올라가도 밤이고 또 할매 시체를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덮어 두었기 때문에 쉽게 발각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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