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산가 김윤세

寂寞荒田側 繁花壓柔枝 香輕梅雨歇 影帶麥風欹

적막황전측 번화압유지 향경매우헐 영대맥풍의

車馬誰見賞 蜂蝶徒相窺 自慚生地賤 堪恨人棄遺

거마수견상 봉접도상규 자참생지천 감한인기유

 

인적이 드문 거친 밭 한쪽에 / 풍성한 꽃이 연약한 가지 위에 피었네

매화 철의 비가 그칠 무렵 향내는 짙어지고 / 보리 바람에 그림자 기울었네 수레 탄 사람 그 누가 눈길을 주는가 / 벌나비만 찾아와 이리저리 볼 뿐이네

태생이 좋지 못하다 스스로 여겨 / 사람들에게 버림받아도 말없이 견디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857~?의 촉규화蜀葵花, ‘접시꽃이란 제목의 시는 애틋하다.

고운선생은 청구靑丘라 불린 해동海東의 선국仙國에서 태어나 지구 역사에 존재하는 모든 나라의 어떤 신화神話보다 더 불가사의한 주인공으로 살다가 홀연 세상을 등진 채 선화仙化한 인물이다.

그는 분명 우리 역사가 낳은 희대의 성자聖者. 비록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조국 신라에 실현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의 유가를 기반으로 하는 시대에 대한 해석과 미래에 대한 전망은 후대의 정치가와 사상가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원대한 이상이 담긴 고운 최치원 선생 문집의 주요 내용을 읽어본 이라면 신라가 최치원 선생을 포용하기엔 고운의 기세와 신념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역사와 유학을 오래도록 연구한 사람일수록 고운 선생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하다는 고충을 털어놓는다. 최치원 선생의 새로운 개혁안이 진골귀족의 세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힌 게 아니라 고운이 지향하는 사회의 전환은 오늘의 대한민국도 실현할 수 없는 원대하고 우주적인 이데아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접시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즈음 최치원 선생의 시문, ‘접시꽃을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접시꽃을 바라보며 왜 그토록 서글픈 감회를 풍성한 꽃에 투영했는가하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희대의 성자가 졸지에 신라라는 소국에서 태어나 명색이 유학인 볼모생활로 약관을 맞았다. 그러나 그의 학문에 대한 이해와 세계에 대한 통찰력은 중원 천지가 신라보다 더 좁게 느껴질 만큼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마침내 사랑하는 조국 신라로 돌아와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이 세상에 없는 신인神人세계이자 이상 국가를 건설하려 했지만 고려의 개국으로 그의 꿈은 일단락되고 만다.

위정자들의 편협한 시각과 좁은 안목은 고운 선생의 반경을 정치의 중심이 아닌 변방으로 내몰았다.

그는 신라의 종말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어 솔처자입가야산率妻子入伽倻山이라는 글귀로 최후의 모습을 세상에 보이고 홀연 자취를 감추었다. 뛰어난 인재人才를 알아보지 못하는 미혹한 세상, 진정한 영웅英雄이 등장할 수 없는 열등한 사회의 폐해는 어제 오늘만의 일은 아닌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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