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행-18

고려시대의 백정은 도살업과 아무 상관없는 일반 농민이었다. 신분도 천인이 아니라 양인이었다.
백정(白丁)이라는 한자의 백(白)은 보통 ‘희다, 없다, 아니다’의 뜻이다. 백의민족의 백의(白衣)는 흰옷이 아니라 색깔 없는 옷, 염색하지 않는 옷을 말한다, 백정도 ‘정(丁)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정(丁)은 ‘정호(丁戶)’를 말한다. 고려시대의 정호는 국가의 직역(職役)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 호칭으로, 백정은 국가에 대하 일정한 직역이 “없‘는 자들을 말한다. 일반 농민들이 이에 해당한다. 고려 때 이들을 ’양수척‘이라 불렀으며, 그 이후 ’화척, 재인‘이라 불렸다.

《세종실록》 5년(1423) 10월 8일자 기사를 보면, 병조에서 세종에게 이런 건의를 하고 있다.
“재인과 화척은 본시 양인으로 업이 천하고 칭호가 특수하여 백성들이 모두 다른 종류의 사람으로 보고 그와 혼인하기를 부끄러워 하니, 불쌍하고 민망합니다. 칭호를 백정(白丁)이라고 고쳐서 평민과 서로 혼인하고 섞여 살게 하며 그 호구를 적에 올리고, 경작하지 않는 밭과 묵은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의 밭의 나눠주어서 농사를 본업으로 삼게 하소서.”
재인이나 화척을 백정이라 부르게 하고 땅을 나눠주어 일반 백성들과 어울리게끔 하자는 것이다.
세종은 병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재인과 화척에게 백정 칭호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재인과 화척을 백정으로 신분 승격시켜준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저 화척과 재인을 불쌍히 여겨 베푼 시혜가 아니라 고려 말 이후로 혼란해진 신분질서를 바로잡아 새나라 조선의 집권체제의 질서를 강화하는 한편 일반 양인 숫자를 늘림으로써 세금 수세원을 확보하여 국가재정을 튼튼히 하기 위한 고도의 정책이었다.

삼국시대는 물론 고려나 조선에서도 천인은 나라에 세금을 내지 않았다. 나라에 세금을 내는 것은 양인들이었다. 토지를 근간으로 붙박이 생활을 하는 농민이야말로 국가가 가장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수세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양수척 또는 화척은 본래 신분은 양인이었지만 실제로는 천인 취급을 받는 이른바  ‘신량역천(身良役賤)’으로서 농사를 짓지 않고 사냥이나 유기제조를 하며 외딴곳에 저희들끼리만 모여 살았다. 결혼도 끼리끼리 했다. 이를테면 국가에서 파악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세종 때 화척과 재인을 백정으로 승격시켜 준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을 안정된 국가의 수세원으로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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