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기행-38

류준열
수필가, 여행칼럼니스터
천상병문학제추진위원장
작품집: 무명그림자 외
전 중등교장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 통치를 받은 나라, 지중해와 대서양을 접하면서 넓은 사하라 사막을 가진 나라, 농경지는 왕족이나 귀족이 소유하고 백성은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나라, 아직도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고 신분 상승이 불가능한 나라 모로코

지중해의 파도는 유럽과 아프리카 대륙 수천 년 반복하여 오가며 부서졌을 텐데, 지금 이 순간에도 하얀 포말 일으키며 철석거리고 있다.

전쟁의 소용돌이에서도 평화스런 나날에서도 흐르는 세월 아랑곳하지 않고 부셔졌으리.

나라의 흥망성쇠 오가는 지중해 파도 알고 있을까.

수천 년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천 년 고도 페스의 구시가지 미로에 들다. 햇빛 한 점 보기 어렵고, 한 사람 겨우 피할 수 있는 좁고 구불구불한 길

전통 상품 만들고 파는 사람, 짐을 지거나 이고 가는 사람,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 노구의 치친 몸을 건물 벽에 기대어 쉬고 있는 사람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물건을 진 나귀, 수 천 갈래로 나누어진 좁디좁은 길은 어둠 속에서도 삶의 수레바퀴 굴러온 피폐한 민중의 길

베 짜는 공장, 염색공장, 이슬람사원, 구구각색의 상품 파는 구멍가게, 맞붙어 있는 민가, 지하땅굴, 구차하고 궁색해 보이는 미로의 어두컴컴한 풍경

수천 년 모로코 사람이 걸어온 세월의 현장이요, 힘겹게 살아왔고 앞으로 이리저리 헤매며 걸어가야 할 삶의 곤고한 자화상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하기 위해 수 천 갈래 미로가 났다고 하는데, 죽을 때까지 걸어도 다 걸어볼 수 없다는 미로, 길 옆 민가의 문은 꼭꼭 잠긴 채 속살 드러내 놓지 않다.

갈 수 있는 길도 있고 갈 수 없는 길도 있으며, 매번 가는 길도 있고, 한 번도 가지 않는 길도 있기에 인생은 미로일지 모른다.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머뭇거리는데, 미로라도 아는 사람은 알아서 자신의 길 찾아 걸어가고 있다.

[지중해 3국 포르투갈, 모로코, 스페인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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