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무이름 사색

▲ 회화나무 꽃과 나무
▲ 회화나무 꽃과 나무

중국 주나라에서는 조정 앞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조정을 괴정(槐庭)’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조선시대에는 승문원(承文院) 앞에 회화나무를 심었다. 그래서 사대(事大,중국)와 교린(交隣,일본·여진) 문서를 관장하고,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에 쓰이는 이문(吏文)의 교육을 담당한 승문원을 괴원(槐院)’이라 부른다.

중국 한나라 때의 궁정에도 200~300살 먹은 회화나무가 있었다. 그래서 황제가 거처하는 곳을 괴신(槐宸)’으로, 장안 거리를 괴로(槐路)’라 불렀다.

더욱이 장안의 9개 큰 시장 중에는 괴시(槐市)라는 이름을 가진 시장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각지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위해 서적, 악기 등의 물건을 판매했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은 중국 사신으로 다녀와서 고향인 호지촌의 지형이 중국의 괴시와 비슷해서 동네 이름을 괴시라 고쳤다.

한 그루의 나무가 문화를 낳는 데는 나무의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갈잎 큰키나무인 회화나무의 꽃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음력 7월경 연한 황색으로 핀다. 이렇게 회화나무 꽃이 필 무렵 중국에서는 과거 중 진사 시험을 치렀다.

그래서 이 시기를 괴추(槐秋)라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를 보러 가거나 합격했을 경우 집에 회화나무를 심곤 했다.

회화나무는 흔히 학자수(學者樹)’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도산서원을 배경으로 한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무성한 나무가 회화나무이며 고산 윤선도 녹우당에는 400살 먹은 회화나무가 있고, 경주시 안강에 위치한 옥산서원 입구,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곳곳, 성주군 한개마을 곳곳에도 회화나무가 즐비하며, 서울 창덕궁의 돈화문 옆 회화나무는 천연기념물이다.

중국 주나라에서는 관직을 나무에 비유했다.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삼공(三公)’이라 부르고, 삼공을 삼괴(三槐)’라 불렀다.

예로부터 그 나무가 가지는 의미로 인하여 귀하게 취급되어 집안에 심으면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어서 즐겨 심는 민속 나무이다.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거목 중의 하나이며, 현재 500~1,000년 된 나무 10여 그루가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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