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박사 조문주
초등교육코칭연구소장
시인

교육학박사 조문주
교육학박사 조문주

얼마 전 지리산에 사시는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산 속에 갇혀 사시는 거네요?”
“보살은 무엇에 갇혀 사는지 알고 있나요?”
문득 나는 무엇에 갇혀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전원주택에 살고 있으니 나도 산에 갇혀 사는 건가?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못 가니 대한민국에 갇혀 사는 건가? 지구에 갇혀 사는 건가?
매주 수요일 열리는 포엠테라피 과정에서 서로 무엇에 갇혀 사는지를 말하게 되었다.
“누가 나를 가두는 건가요?”
자식에게 갇히고, 시댁에 갇히고, 집에 갇히고 직장에 갇혀 살고 있음을 말한다.
나를 가둔 것은 8할이 남이라고 생각했다.
유안진의 ‘내가 나의 감옥이다’ 시를 나누었다.
한눈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이하 생략)
나의 감옥은 내가 만드는 것인 줄을 새삼 느낀다. 9가지 에니어그램으로 성격 분석을 예로 들 수 있다. 각자의 성향에 갇혀 자기 성향으로 세상을 보고 타인을 보는 것이다.
나와 다르면 은연중에 틀렸다고 여기며 자기에게 갇혀 고집을 부리는 것이다. 나는 에니어그램 7번 유형이다. 그래서 즐거움의 욕구에 갇혀 사는 편이다. 재미가 없으면 우울해지곤 한다. 재미라는 감옥에 갇혀 쉴 줄 모르고 늘 바쁘게 사는 거다.
원리원칙에 갇혀 사는 에니어그램 1번유형 회원은 ‘남편 때문에 괴롭다.’고 연신 말한다. 양말이 제 자리에 있어야하고 신발은 늘 가지런해야하는데 그게 안 되면 괴롭다고 한다. 정돈의 감옥에 갇혀있음을 우리는 아는데 본인은 모른다.
실존주의 작가인 까뮈가 쓴 이방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아무도 나를 가둘 수 없어.’ 살인죄로 사형을 기다리며 감옥에 갇혀있지만 주인공 뫼르소는 갇힌 속에서도 자유를 즐긴다. 마음의 자유다.
저녁 무렵,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온다.
“너네 집 왜 이리 어두워?” “그 썬글라스를 벗어봐라.” 자기가 썬글라스를 썼다는 걸 잊고서 남의 집이 어둡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파란 안경을 쓰면 파란세상, 빨간 안경을 쓰면 빨갛게 보인다는 이치다. 미움의 안경으로 자식을 보고 남편을 보니 미울 수밖에 없다. 감사의 안경을 쓰고 보면 온 세상이 감사할 것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알기는 쉽지 않은 것이다.  
“스님, 어떻게 해야 이 감옥에서 벗어 날수가 있을까요?”
“순간순간 멈추어서 내 안을 들여다보는 겁니다. 지금 어떤 감옥에 갇혀서 괴로워하는지를 살펴보는 습관이 필요한 겁니다.”
먹고 싶은 걸 멈추지 못해서 비만의 감옥에 갇히는 나. 탐욕의 감옥, 고집의 감옥, 불안의 감옥, 시시각각으로 나는 어떤 감옥에 갇히고 있는지 돌아보며 마음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감사생활로 자유와 행복의 감옥에 나를 가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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