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 나들이 –32

세종대왕의 실제 재위기간은 1418년 8월 10일부터 1450년 2월 17일까지 32년의 긴 세월인데, 실제로 왕의 역할은 28년뿐이다.
이유는 세종의 즉위과정 때문인데, 원래 태종의 후계는 첫째아들인 양녕대군의 몫이었다. 태종의 장남으로 태어나 세자로 책봉되어 14년 동안 왕세자 자리에 있었던 양녕대군. 문제는 양녕대군이 탈을 만들어 1418년 폐세자를 단행하고, 이어서 둘째아들 효령대군 마져 내 치더니 세째아들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그리고 두 달만에 세자에게 양위를 한다. 정상적인 왕위승계는 왕세자로서 10여년의 교육과 훈련을 통하여 즉위하게 되는데 충녕대군은 세자가 된지 두 달 만에 보위에 오르게 된다.
단 태종은 양위를 하면서 “주상이 장년이 되기까지 군사의 일은 내가 직접 주관하고, 그 밖의 국가 주요대사는 정부와 6조로 하여금 가부를 의논하고 나도 참여하여 주상을 도울 것이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태종이 양위를 하면서 이런 무리수를 뒀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두 달짜리 세자로서 제왕학을 수련하지 못한 세종에 대한 ‘실무교육’을 위함이다.
둘째, 어머니인 원경왕후와 폐세자 양녕대군의 측근에 대한 견제를 하여 세종을 위한 바람막이 역할이다.
셋째, 영의정에 오른 세종의 장인 심온을 역적으로 몰아 사형시키는 등 외척을 비롯한 측근세력을 척결하기 위함이다. 외척의 준동을 경계하기 위하여 본인의 처가인 민씨 일가마져 도륙을 내었지 않았는가.
세종의 수습기간은 그 뒤로 4년이나 이어졌는데, 태종이 눈을 감고 나서야 수습 딱지를 뗄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 태종의 지나친 참견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이 4년의 수습기간 덕분에 세종은 강력한 왕권으로 안정된 조정을 이끌어 역사에 길이 남을 성군이 될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세종대왕이 조선조 최초로 수습기간을 거친 왕이란 사실은 역사가 증언해 주고 있다.

[타임머신]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