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행-22

임진왜란 대 왜군을 물리치고 대승리를 거둔 행주산성 전투에서 부녀자들이 앞치마에 돌을 날라 싸움을 도왔으며 그로 인해 앞치마를 행주치마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행주치마 때문에 행주산성이 된 걸까, 아니면 행주산성 때문에 행주치마가 된 걸까?

행주치마와 행주산성은 행주대첩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각각 따로 존재했던 이름이다.

행주라는 지명이 고려 초에 이미 있었으니, 이는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무려 600여 년 전이다.

행주의 산에 처음 산성을 쌓은 것이 삼국시대로써 이곳은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강의 지배권을 두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럼 행주치마의 ‘행주’는 무슨 뜻이었을까? 《훈몽자회》의 말抹자 풀이를 보면, ‘행주’라 쓰여 있고 바로 옆에 ‘抹布’라는 한자가 달려 있다. ‘말포抹布’는 ‘닦을 말’, ‘베 포’이니 곧 ‘닦는 베’, ‘닦는 헝겊’이다.

무엇인가를 닦는 헝겊을 ‘행주’라 부른 것이다. 행주치마는 행주대첩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여인네들이 눈물과 한숨까지 닦아내던 치마 위에 걸치는 앞치마였다.

그런데도 오해가 생긴 것은 행주산성의 ‘행주’ 와 행주치마의 ‘행주’가 음이 같기 때문에 어원도 같을 거라고 잘못 추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음운의 유사함으로 어원을 유추하는 것을 언어학에서는 민간어원설이라 한다.

민간어원설은 음운의 유사함을 좇다 보니 본래의 어원과는 전혀 달리 오류를 낳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화냥년’을 ‘환향녀還鄕女’에서 온 말이라 한다든지, ‘고린내’를 ‘고려취高麗臭’에서 온 말이라 하는 게 그 예다.

고린내는 ‘곯다’가 어원인 순 우리말이고, 고려취는 중국인들이 고려인들은 목욕을 자주 안 해서 발 냄새가 심하다며 멸시하는 뜻으로 했던 말로 고린내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화냥년은 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인들을 뜻하는 ‘환향녀還鄕女’에서 온 말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중국어 ‘화랑花娘’ 또는 만주어 ‘hayan’에서 나온 말로 추정된다.

행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것이 순전히 행주치마의 활약에 힘입은 석전石戰이었을까?

행주대첩은 3천 병력으로 3만 왜군과 싸운 필사의 격전으로 돌멩이와 애국심만으로는 승리가 불가능하다.

행주산성에는 화차라는 무기가 있었다. 신기전, 비격진천뢰, 총통도 있었다.

행주대첩 승리는 유리한 지형조건, 우수한 화약무기, 일치단결한 병사들과 백성들, 그 삼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고종 3년(1866) 9월 3일자 《승정원일기》는 “우리나라의 승리로는 행주에서의 쾌전이 가장 큰 것이었는데, 산기슭이 암석으로 덮여 있어 시석矢石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적이 와서 힘껏 공격하다가 패배하여 돌아간 것입니다.”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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