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팔사(消暑八事)-1, 2

더위를 없애는 8가지 일을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소서팔사(消暑八事)라 말했다.

그가 63세 되던 1824(갑신년) 여름에 지은 것으로, 18년간의 기나긴 유배에서 풀려난 지 5년 만에 그간의 학문적 업적을 정리하고, 묘지명까지 지어둔다.

부조리한 현실을 고발하는 글을 쓰던 젊은 시절과 달리 다산의 노년의 작품에는 개인적인 체험과 정서가 두드러진다. <소서팔사>도 그 중의 하나다.

1.솔밭에서 활쏘기-송단호시(松壇弧矢) 2.회나무 아래 그네타기-괴음추천(槐陰鞦遷) 3.빈 누각에서 투호하기-허각투호(虛閣投壺) 4.대자리에서 바둑 두기-청점혁기(淸簟奕棋) 5.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서지상하(西池賞荷) 6.숲 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동림청선(東林聽蟬) 7.비 오는 날 시 짓기-우일석운(雨日射韻) 8.달밤에 발 담그기-월야탁족(月夜濯足). 모두 몰입을 통해 더위를 잊는 방법이다.

퇴계 이황선생은 투호를 정심투호라 하여 정신을 집중하는 데 이용했고,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는 문신과 무신 모두 활쏘기에 집중할 것을 독려했다. 과녁에 맞추면 지화자라 부르며 즐겼다.

술은 연잎을 이용해 잎 가운데를 비녀로 찔러 술을 흐르게 하는 풍류를 즐겼다.

조선시대는 생활의 즐거움과 수양, 산업이 일치된 사회로 더위를 이기는 방법에도 풍류와 지적 취미가 존재했다.

코로나로 인해 굳게 닫혔던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등 공공시설이 다시 문을 열었다.

산으로 들로 바다로 놀러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맘껏 푸는 것도 소서팔사가 되겠지만 책과 음악, 그림을 감상하며 자기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혼탁한 세상사에서 극기하는 일일 것이다.

1. 송단호시(松壇弧矢) : 소나무단에서 활쏘기

화살통 가운데 두고 양쪽 계단 짝지어 오르고

오얏 담그고 오이 물에 띄웠으며 술동이도 가득하다.

깁 휘장은 소나무숲 틈의 햇살을 교대로 가리고

베 과녁은 밤나무숲 바람에 배가 잔뜩 불렀다.

들판에 자리 더 넓혀서 기러기 손님도 받아들이고

서늘한 시렁 매어서 짐짓 늙은 곰 흉내도 내니,

모두 말하길 염천의 여름을 소일하기 좋거늘

하필 눈 오는 날 활 시위 울려 과시하겠냐네.

2. 괴음추천(槐陰鞦遷) : 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방초 둑에 횃대처럼 누운 홰나무 굽은 가지에

그넷줄 드리우고 두 허벅지 가지런히 모으네.

바위틈에서 번개처럼 낚아챌까 두려워하듯 차오르고

높이 올라가면 하늘 밖 푸른 구름이 홀연 나직하네.

굴러서 올 땐 자못 허리 굽은 자벌레

떨쳐서 갈 땐 참으로 날개 치는 장닭.

솔솔 부는 서늘 바람이 좌중에 불어오니

붉은 해 벌써 서쪽으로 기운 것도 모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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