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한국문인협회, 신서정문학회
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남강문학협회 감사

7 유혹
1.
태완이가 다시 공격하기 위하여 낫을 빼자 비로소 할매의 목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하였고, 할매의 양쪽 어깨쭉지 부분의 옷이 시뻘겋게 피로 물들기 시작하였다.
“태완아, 왜 그래, 이 할미가 잘못했다, 할미를 용서해 다오”
할매는 다급한 나머지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면서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호소를 한다.
“할매, 내 이름을 부르지 마요, 내가 할매를 죽이려는게 아니고 신자년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라요”
“태완아, 태완아 내는 신자가 아니고 할맨기라, 무맹할맨기라”
“아이 씨, 이름을 부르지 말라니까 그러네, 그라고 할매, 할매 한테는 미안한데 내는 신자한테 감정이 있는 기라, 신자가 낼 무시했다 아잉교.”
“나는 신자를 사랑하는데 신자가 나를 배신하고 병식이에게 가버렸다 아입니꺼, 나는 그 복수를 하는 기라예” 라고 하고 싶었으나 그 말은 차마 나오지 않는다.
이제는 끝을 내어야 한다.
태완이가 다시 낫을 꼬나쥐고 할매를 공격을 하려는데 할매가 벌떡 일어나 내리막을 달리기 시작하였고, 태완이는 뒤 쫒아가면서 할매의 등과 어깨, 목을 닥치는 대로 찍어대기 시작한다.
“할매, 내는 신자를 죽여야 하는 기라, 신자를 죽이야 하는 기라예.”
수 십 군데 난자당한 할매는 도망을 가다가 경사가 심한 곳에서 곧바로 굴러 떨어졌고 그래도 숨이 붙어 할딱거리는데 태완이는 할매가 데굴데굴 구른 그 거리를 두 세 걸음으로 뒤 쫒아 온 후 자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할매를 다시 내리찍기 시작한다.
할매는 태완이의 낫을 피하기 위하여 몸을 이리저리 굴려 보지만 태완이의 낫은 단 한 차례도 빗나가지 않고 할매의 몸을 난도질 한다.
할매의 피가 튀어 할매 몸에 묻어 있는 만큼의 피가 태완이의 몸에도 묻는다.
할매는 더 이상 도망갈 기력이 없는지 온통 취나물만 소복히 자라는 곳에 반드시 누운 채 한 참동안 눈을 감았다가 바르르 떨며 힘들게 눈을 떠 태완이를 노려보는데 그 눈동자는 이미 풀어져 희멀건 하다.
할매가 평생 동안 찾아 헤매던, 벼랑 밑 저 만치서 한 포기만 있어도 기어코 다가가서 곱게 잘라 바구니에 넣던 그 소중한 취나물 밭에 할매는 반드시 누운 채 피 묻은 손으로 취나물 한 웅큼을 잡고 있다.
태완이는 취나물을 한 웅큼 쥐고 있는 피 묻은 할매 손을 바라보면서 살짝 데친 취나물에 간장과 참기름을 조금씩 넣고 조물조물 주물러 밥반찬으로 내어 주던 작년 봄날의 생각이 언 듯 떠 오른다.
그날 태완이는 대충 밭일을 마치고 집에 왔으나 집에는 아무도 없고, 할매집에서 인기척이 나므로 할매집에서 밥을 얻어 먹을 요량으로 할매에게 찾아가자 할매는 마침 밥을 먹으려던 참이라면서 돌나물로 만든 물김치와 함께 취나물 반찬을 내어 놓았고, 배가 고픈 태완이는 큰 사발 밥 한 공기를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면서 그렇게 향기로운 취나물은 세상에 다시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 순간, 피비린내가 슬며시 베어 오르는 살벌한 이 순간, 피비린내와 취나물의 상큼한 향기가 섞여 머릿속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
낫에 찍혀 구멍이 나고 가시덤불에 걸려 찢어진 할매의 얇은 셔츠는 온통 피에 물든 채 반쯤 말려 올라가 벗겨져 있는데 말려 올라 간 셔츠 밑으로 앙상한 가슴뼈가 마치 곱추의 굽은 등뼈 마냥 툭 튀어 나와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 갔다를 반복하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할매는 부릅뜬 눈으로 태완이를 노려보면서 입으로는 무엇인가 우물거리는데 말이 되어 나오지 않고 오히려 목에 피가 고이는지 쿨룩거릴 때 마다 찢어진 목과 입으로 피가 튀어 나온다.
할머니가 노려보는 눈빛이 너무 무섭다. 저 무서운 눈빛을 빨리 지워야 한다.

태완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 바로 옆에 자신의 머리통 만한 바위가 있음을 발견하고 바윗돌을 들어 할매의 얼굴을 향해 내리 찍는다.
꿈에서 병식이가 건네 준 바위하고 어쩌면 그렇게 꼭 같은 지 신기하기만 하다.
바윗돌이 할매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할매의 머리는 ‘퍽’하는 소리를 내면서 주저앉는다.
바윗돌을 들어 내리치는 순간 태완이는 고개를 돌렸다.
퍽 하는 소리가 들였지만 무너져 내리는 할매의 몰골이 파란 도화지 하늘에 그려진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