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용수
한국문인협회, 신서정문학회
국보문인협회 부이사장
남강문학협회 감사

7 유혹

1.

태완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 바로 옆에 자신의 머리통 만한 바위가 있음을 발견하고 바윗돌을 들어 할매의 얼굴을 향해 내리 찍는다.

꿈에서 병식이가 건네 준 바위하고 어쩌면 그렇게 꼭 같은 지 신기하기만 하다.

바윗돌이 할매의 머리 위로 떨어지자 할매의 머리는 하는 소리를 내면서 주저앉는다.

바윗돌을 들어 내리치는 순간 태완이는 고개를 돌렸다

 하는 소리가 들였지만 무너져 내리는 할매의 몰골이 파란 도화지 하늘에 그려진다. 

성냥불이 꺼지기 직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면서 활 타오르는 것처럼 할매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곧이어 잠잠해 지면서 축 늘어진다.

더 이상의 소리도 없고, 움직임도 없다.

죽은 것이다.

할머니의 주검 앞에 서 있는 태완이의 얼굴은 힘들고 어려운 제사를 막 마친 제사장이 밀려드는 성취감과 허탈함을 감추기 위하여 한결 더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이다.

세상은 정적 속으로, 깊은 바다 속으로 빠르게 빠르게 빠져 들어 가고 있다.

한 없는 바다 속으로 빠져 들어 가는 정적의 시간은 채 1초도 되지 않는 찰나이다.

태완이는 제사장으로서 마지막 의식을 행하여야 제례가 끝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태완이는 할머니의 허벅지 쪽에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뭉개진 할머니의 얼굴은 애써 외면한 채 고쟁이 바지를 두 손으로 잡고 단번에 벗겨 내린다.

고쟁이 바지가 벗겨지면서 빨간색 내복도 함께 벗겨졌고, 그 속에는 태완이 팔뚝보다 결코 굵지 않은 할매의 비쩍 말라 앙상하지만 하얀 허벅지가 봄볕에 반짝이고, 말려 올라 간 셔츠 밑으로 보이는 축 늘어져 쪼글거리는 아랫배가 처량하게 드러난다.

태완이는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속고쟁이를 벗겨 내리면서 뒤집자 속고쟁이 안쪽에는 흰색 천을 덧대어 만든 큼지막한 주머니가 나타나고 그 주머니는 한 눈에 보아도 제법 두툼한 것이 들어 있다.

할매가 속고쟁이 안쪽에 천을 덧대어 속주머니를 만들고 그 속주머니에 돈을 넣어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할매가 사는 집 방안에는 별다른 세간이 없어 돈을 감출만한 곳이 없으므로 할매는 가진 돈을 모두 속고쟁이에 넣어 가지고 다닌다.

태완이가 어렸을 때 이따금 구멍가게 데리고 가서 과자를 사 주면서 고쟁이 속으로 손을 넣어 돈을 꺼내는 것을 보아 왔다.

좀 전에 할매가 돈을 감출 때도 고쟁이 속으로 돈을 집어넣는 것을 보았다.

그 주머니 안에서 할매가 생명같이 간직하고 있던 돈이 나온다.

태완이는 그 돈의 액수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돈을 꺼내어 자기가 입고 있는 군복바지 뒷주머니에 쑤셔 넣으면서 황급히 일어난다.

일순 태완이의 얼굴에는 승리자의 미소가 스쳐 지나간다.

돈을 챙긴 태완이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몇 발자국 내려오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할매에게 다가가 할매의 목에 손을 대어 맥을 짚어 보고 가슴을 헤쳐 숨을 쉬는지 확인한다.

할매는 확실히 절명하였다.

아직도 쿨쿨 쏟아지는 피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보이기도 하지만 저렇게 두개골이 박살 난 사람이 살아 있을 수는 없다.

할머니의 두개골은 완전히 박살이 나서 얼굴은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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