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역사 나들이-33

사도세자는 후궁과의 사이에서 아들 3명을 두었는데 영조47(1771) 2월 제주도로 귀양을 갔던 은언군은 3년후 서울로 돌아와 왕족으로 대우를 받고 살았다.

정조가 죽고 순조가 즉위하여 정순왕후가 수렴청정 시작하면서 은언군의 막내인 전계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순조 30(1830) 전계군을 다시 서울에 와서 살도록 하여 이들은 왕족으로서 대우를 받고 살았다. 헌종10(1844) 전계군의 둘째아들인 영평군과 막내아들인 원범(철종)은 강화도로 유배되어 농부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18496624대 왕 헌종이 후사 없이 사망하자 순조의 왕비 순원왕후는 원범으로 하여금 왕위를 이으라고 지시하여 원범은 68일 덕완군(德完君)에 봉해지고, 가마와 많은 호위 군사를 거느리고 강화도에 나타나자 강화도령은 자기를 잡으러 온 줄 알고 외가 다락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이튿날인 69일 창덕군 희정당에서 관례(冠禮)를 행한 뒤 인정문에서 즉위하였다.

별안간 왕이 된 원범은 나이가 19세가 되었지만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다.

철종2(1851) 9월에는 대왕대비의 친척인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고 철종3(1852)부터 친정(親政)을 하였는데 정치의 실권은 안동김씨 일족에 의하여 좌우되었다.

전정(田政) · 군정(軍政) · 환곡(還穀)의 문란이 더욱 심해지고 탐관오리가 횡행하여 생활이 도탄에 빠지게 된 백성들은 1862년 봄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삼남시방 여러 곳에서 민란을 일으켰다. 민란의 원인이 된 삼정(三政)의 폐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등 민란수습에 진력하였다. 철종은 1863128일 재위 14년 만에 33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철종이 사망하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인 12살의 명복(고종)이 조선 26대 왕위에 올랐다.

[타임머신]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