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종범
정치학 박사
전 주중국대사관 공사
통일지도자 아카데미 부원장

논설위원 박종범
논설위원 박종범

공기 중의 기온과 밀도의 차이가 나면 아지랑이 현상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차이가 크게 나면 신기루가 형성된다고 한다. 분명히 보이는데 가까이 가면 없는 허상을 신기루라 한다. 1798년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 군이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야자수를 목격하고 다가갔으나 허상이어서 허탈해 했다는 얘기는 유명한 일화다. 지금 미래통합당이 신기루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앞선 일이 있자 이에 자극받아 호남과 중도층을 끌어안고 당의 분위기를 일신하겠다며 분주하다. 새 정강정책을 만들어 ‘기본소득’, ‘피선거권 연령 하향조정’ 등 더불어민주당이 주장해온 내용을 선제적으로 먼저 주장하며 새로운 정체성으로 중도 외연확장을 모색한다고 한다. 아무래도 ‘중도’를 정체성으로 삼은 것 같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8월 19일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민중항쟁추모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늦게 찾아와 부끄럽고 죄송하다’며 사과와 참회의 모습을 보였다. 마치 1970년 12월 빌리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방문 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렵탑 앞에서 무릎 꿇고 참회한 것처럼 행동했고, 영화배우처럼 눈물을 잘 흘렸다고 한다. 이를 보고 정치적 발전이라고 하는 자도 있지만 통합당을 지지해온 유권자들은 그런 생각보다는 정치 쇼를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지금은 평화시기가 아니라 좌파의 체제침탈 도전에 맞서 투쟁해야 하는 전쟁 같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8월 11일부터 전라도 지역에 내려가 수해현장을 찾아 수해 재난지원금을 최소 3~4배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편협하고 경솔하다고 지적하면 지나칠지 모르나 균형 잡힌 시각에서 나온 언사는 결코 아니다. 또 그렇게 아부한다고 호남의 민심을 살 수 없음을 주호영 자신도 잘 알 것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좌파정부가 코로나 바이러스를 핑계로 저지르고 있는 자유우파 탄압을 규탄하거나 부정선거 의혹의 신속한 수사진행을 요청하는 정면승부의 모습을 보인다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좌파정부의 폭정을 저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는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한다.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다른 엉뚱한 일을 하는 것은 비겁하고 의도적인 기피 행위다. 지지 국민에 대한 도리가 결코 아니다. 

일제 때 일본경찰의 앞잡이 짓을 하면서 동족의 피를 빨아먹었던 ‘조센징’이 있었다. 그들은 당시 동족을 팔아 자기 잇속을 챙겼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본인처럼 대우 받지는 못했다. 그런 일본군 앞잡이 짓과 유사한 형국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8월 21일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세월호 유가족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당 차원에서 조치를 취하겠다면서 우리가 다가가야 할 것은 전체 국민의 생각이라며, 그간 힘써 좌파정부에 항거하며 자유민주주의체제 수호를 주장해 온 한기총 회장 전광훈 목사를 극우라서 용서 못한다며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였다. 신성한 자유민주주의 수호 주장을 극우라는 핑계를 붙여 과감히 처단해야 한다며 좌파정부에 아부한다고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할 국민은 거의 없다. 전쟁 때와 평화 시기를 구분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솔한 언행인 것 같다.

중도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미래통합당의 발상은 물론 옳은 선택이다. 그러나 방법을 잘못 취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원래 중도란 나타난 현상일 뿐이지 본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 같은 허상이다. 상황변화에 따라 그 성향이 순간순간 바뀌는 게 중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는 강한 원심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상책이며, 쫓아다니는 것은 하책이다. 더구나 중도를 쫓아가기 위해 ‘극우니까 버리겠다’는 언사는 무모한 심사다. 심지어 중도 확보를 위해 당의 정체성을 바꾸려 한다면 분명 다른 정치적 의도로 비칠 수 있다. 지금 우파는 좌파와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고 체제선택 문제를 놓고 전쟁을 해야 한다, 상황이 그렇게 한가한 것 같지 않다. 국민통합의 모습을 취하는 건 좋지만 항복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좌파들이 지지성향을 바꿀 거라고 판단했다면 정치적 사고로는 미숙한 편이다. 외연을 확장한답시고 당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시도는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지켜온 기존 자유우파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재단하여 입히려는 것과 같다. 체제는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정당이라면 이제 자유우파는 미련을 버릴 수도 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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