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의 조(祖) 와 종(宗)과 군(君)
조선왕의 조(祖) 와 종(宗)과 군(君)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2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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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역사 나들이-36

조선의 왕 27명 가운데 조를 받은 인물이 일곱 명, 종을 받은 인물이 열여덟 명, 군을 받은 인물이 두 명이다. 조선 초기에는 왕들이 조와 종의 차이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았으나, 차차 조가 종보다 상위라고 인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조에 집착을 하게 되었고, 특히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적인 흠이 있는 왕들에게서 이런 집착을 찾아볼 수 있다.

1대 태조 조선이란 나라를 개창한 공이 인정되므로 당연히 조가 붙어야 할 것이다.

7대 세조는 아무리 봐도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불안감이 묻어 있다. 멀쩡한 단종을 죽이고 보위를 찬탈한 임금이기에 정통성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겠다. 세조는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조카를 죽인 건 사실이다. 아울러 훈구세력과 공신세력의 비대화로 이후 정권에 부담을 준 부분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왕에게 이 있을 수 있을까? 물론 예종과 성종의 입장에서는 분명 이 있는 왕이긴 하다.

14대 선조는 공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조선 붕당정치의 시발점이 된 시기가 선조 시기였고, 임진왜란 기간 내내 도망만 다녔으며, 임진왜란 기간 내내 선위파동을 일으켜 전시 행정부를 무력화한 것은 물론, 말년에는 후계 구도까지 헝클어놓아 조선을 다시 위기로 몰아간 장본인이 선조이다.

16대 인조는 쿠데타인 인조반정의 주인공이다. 인조반정의 명분으로 내세운 폐모살제(廢母殺弟)는 말 그대로 표면상의 이유였고, 실질적인 이유는 광해군이 시행하려 한 대동법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었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고 나서다 두 번의 호란을 불러일으켰고, 조선 개화의 희망이던 소현세자마저 죽여버린 비정한 임금이었다. 이런 왕에게 공이 있을까?

21대부터 23대까지의 영조, 정조, 순조의 경우 영조는 반신반의, 정조의 경우는 수긍할 수 있겠다. 조선 왕조의 역사는 세종이 앞에서 끌고 정조가 뒤에서 밀었기에 이어올 수 있었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 후기 르네상스를 이끈 영조와 정조에게는 분명 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일곱 명 가운데 수긍할 수 있는 인물은 1대 태조, 21대 영조, 22대 정조 정도가 다이다. 따라서 실제로 공이 있어서 조를 받은 경우는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정치적 안배 차원에서의 배려인 것이었다.

[타임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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