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느낌이 어땠기에 그걸 못 잊어 그렇게 맘 졸이며 살았을까. 어떤 마음이 일었기에 그토록 밤낮을 애태우며 자신을 아끼지 않고 헤매었던가. 눈 오고 비 오며 바람 부는 날, 들리는 목소리 밟히는 얼굴이 하루의 노고를 묻어버렸음일까. 대문 안에 들어 선 님의 남은 표정은 그리도 환한 미소뿐이었을까. 한 달의 마지막 날, 한 해의 끝 날 달력을 넘기거나 바꿔 달 때 마다 언 듯 뇌리를 스치는 날이 있다. 그것은 님의 생일이고 기념일이다. 수 많은 날 중의 그 날도 또 그 날을 기억하는 날이 되고 만다.

  하얀 종이에 파란 색 볼펜으로 긁적거린다. 기억나는 느낌을 형식 없이 그려보고 써 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 자꾸만 글 길을 막아 몇 번이고 쓰다 말고 결국은 빨간색 볼펜으로 긋고는 구겨 버린다. 책상 밑에 던져진 종이에서 오래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창문 틈으로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도 아련하다. 이젠 잘 늙은 할머니일까. 노망 든 할망구일까. 아니면 혈기 넘치는 젊은 아낙의 호령에 기가 눌린 이웃 할머니로 변해 있을까.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꽉 짜인 뇌 한 쪽, 외갓집 아래채가 나타난다. 외할머니 방 윗목에 자리 한 화롯가 긴 담뱃대에 뽀얀 연기가 똬리를 틀고 오른다. 온 방에 가득한 연기 속 옛 이야기가 추억 되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린다. 소죽 끓이던 외삼촌이 구운 고구마 몇 개를 종이포대 조각에 싸서 방 안으로 들여 놓는 오래 된 영상이 스쳐 지난다. 그의 누나는 나의 어머니가 되셨다. 하지만 열아홉에 시집 온 처녀의 얼굴은 사진 속에 들어 나의 책상위에 하얀 두루마기 입은 총각아버지와 함께 앉은 채 걸려 있다. 철부지 열아홉 빡빡머리 총각과 가운데 가르마를 탄 풋 처녀 모습이다.

  아홉이라는 숫자가 인생의 판도를 기구하게 바꿔 놓는다. 학자처녀와 농사꾼 총각의 기구한 만남도 그렇지만 결혼연령 19세, 사별나이 39세, 재혼 상대 열아홉 살 연하 시골 처녀. 중신애비는 처녀보다 한 살 적은 전처 큰아들. 참 난해한 결혼이었다. 감히 범띠 아가씨가 아니었다면, 억척같이 가정살림에 혼신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낳은 6남매의 앞길은 얼마나 기구했을까. 불철주야 돈 벌기에 일생을 다했던 아버지의 벅찬 숨소리가 짬짬이 들려온다. 고삐 매인 염소가 되어 병실을 채운 약 7년간의 날들. 함께 한 가족인지 매달린 스페어타이언지 늘 조급하고 힘들기만 했다.

  두 얼굴의 정(情)도 정이었던가. 미운 정도 정이었는가 보다. 문어의 마음을 밀어 낸  뻐꾸기의 마음도 어미의 마음일까. 청아하지만 능청스런 목소리로 울어대는 여름이 밉고, 바위 밑에 가득 붙은 문어, 채 깨우지 못한 알 몇을 두고 떠나는 썰물이 밉다. 병상에서 말 못해 울부짖고 떠나는 아버지의 모습이 불쌍하고, 뒤돌아보지 않는 무상한 세월이 한스럽다.
 
  하늘은 푸르고 땅은 붉고 바다 또한 쪽빛인데 인간이 안고 있는 정은 무슨 색일꼬.
기진맥진 늘어지고 퍼져 빠진 몸과 마음 다독일 힘없어지고 네 몸에서 출산한 후손들마저 제각각. 지는 해를 알고 있나 뜨는 달을 보고 있나 한 밤중에 들려오는 별들의 속삭임을 언제 한 번 들어 봤나. 이 색 저 색 다 모으면 검정색이 된다는데 흩어진 그 얕은 정(情)들 언제 한 번 모여서 제 색(色)되어 빛날꼬. 큰 숨 막히기 전 뜻 모아 모여 보렴. 찬란한 고향 아늑했던 태양 빛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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