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

옛날에 한 처녀가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병치레를 많이 하는 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었다. 다행히 이 아가씨는 수를 기가 막히게 잘 놓아서 두 모녀는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이 아가씨가 집에서 수를 놓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문을 두드리며 말하였다.

집에 사람이 있나요? 저희는 길 가던 사람입니다. 저희 도련님께서 목이 말라서 그런데 물 한 모금 마실 수 있을까요?” 마음씨 고운 아가씨는 그릇에 물을 받아서 문틈 사이로 건네주었다.

정말 희고 고운 손이군!’ 도련님은 눈을 반짝이며 방안을 훔쳐보았다. 거기엔 가는 허리의 여자 뒷모습이 보였는데 정말 눈이 부셨다. ‘정말 아름다운 여자야!’ 문밖에서 도련님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도련님은 집에 가서도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차마 부모님에게 말씀드릴 수 없어서 혼자 생각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는 결국 몸져눕고 말았다. 사정을 알게 된 어머니는 아가씨 집으로 직접 갔다. 아가씨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과 결혼을 하게 되면 도련님이 공부를 게을리하여, 과거 시험 준비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만이 공부를 열심히 하여 급제하면 결혼을 승낙하겠노라고 조건을 걸었다.

도련님은 이 소식을 듣고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로 과거 시험을 치러 떠나기 전날 밤, 도련님은 하인의 도움으로 몰래 아가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 둘은 만나는 순간 사랑에 빠져 둘만의 결혼식을 치렀고, 눈물을 흘리며 이별하였다.

과거를 보러 가는 길에 도련님이 병이 들어 노잣돈이 부족하여 하인은 도련님을 주막에 맡겨두고 집으로 가 돈을 마련하고 얼른 주막에 가보니 도련님은 주막에 없었다. 수소문을 해보니 어떤 사람이 도련님이 돈이 없어 주막에서 쫓겨나던 중에 그만 발을 헛디뎌 강으로 빠져 익사했다는 것이다. 시신을 찾아 확인해 보니 도련님의 머리는 물에 불어 공처럼 커져 있었다. 하인은 죽은 도련님의 관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가씨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기절해 버렸다. 그리고 물 한 모금도 넘기지 못하고 몸져누웠다. 점차 몸이 쇠약해져 그녀는 한 달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도련님은 과거에 급제하여 관복을 입고 돌아왔다. 그동안 여관에서 쫓겨난 후 배가 고파 옷을 먹을 것과 바꾸었고, 좋은 사람을 만나 서울까지 가서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던 것이며,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은 사실 도련님의 옷을 사서 입고 다녔던 사람이었다.

아가씨가 자기를 따라서 죽었다는 말을 듣고 그녀의 무덤을 찾았다. 그는 슬픔에 3일 밤낮으로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무덤을 지키다가 나흘째 되던 날 그만 아가씨를 따라 저세상으로 가버렸다.

사람들은 아가씨의 무덤을 파서, 둘을 같이 합장했다. 그리고 이튿날이 되자 무덤에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자랐는데 하얀 꽃이 피어나고 향기가 코를 찔렀다.

사람들은 아가씨와 도련님의 이름을 항 글자씩 따서 이 식물에 치자(梔子)’라는 이름을 지었다.

- 옮긴 글 : 한의사 최현명의 재미있는 한약이야기 -

치자  꽃(사진 제공 강신근)
치자 꽃(사진 제공 강신근)

치자나무는 꼭두서닛과로 원산지는 중국이며, 상록(常綠)의 소관목으로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 아프리카, 유럽 남아메리카, 호주 등 남북위도 30도 이내의 온대와 열대에 걸쳐 분포되어서 자란다. 햇빛을 좋아하는 양성(陽性) 식물이지만 그늘에서도 비교적 잘 견딘다. 그윽한 향기를 가져 정원수로 많이 이용되고, 열매는 예부터 염색과 음식 등으로 이용했다. 치자 열매에는 크로신(Cronin), 크로세틴(Crocetin)이라는 황색 색소를 가지고 있어서 천연염료로 먼 옛날부터 널리 쓰여왔다. 열매를 깨뜨려 물에 담가두면 노란 치자 물이 우러나오는데 농도가 짙을수록 노란빛에 붉은 기운이 들어간 주황색이다. 이것으로 삼베, 모시 등의 옷감에서부터 종이까지 옛사람들의 생활용품을 아름답게 물들였는데 지금까지의 인공색소와는 전혀 다른 천연염색 제이다. 그리고 각종 전() 등 전통 음식의 색깔을 내는데 빠질 수 없는 재료였다. 특히 9~11월에 과실이 성숙하여 홍 황색을 띨 때 채취하여 과경(果勁)과 잡질을 제거해서 김이 날 때까지 찌거나 끓는 물에 넣고 대충 데친 뒤 꺼내어 건조한다. 약으로 쓸 경우는 껍질이 얇고 충실하며 호황색인 것이 좋다. 이명(異名)으로는 월도, 산치자, 소치자, 황차자, 환치 등으로 불린다.

남해 섬에서는 치자를 유자, 비자와 함께 삼자(三子)라 부릴 정도로 많이 재배한 식물이다.

치자 나무(사진 제공 강신근)
치자 나무(사진 제공 강신근)

 

동의보감에서는 치자를 기록하기를 성질은 차며 맛이 쓰고 독이 없다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가슴과 대소장(大小腸)에 있는 심한 열과 위 안에 있는 열, 그리고 속이 답답한 것을 낫게 하고, 열풍독(熱風毒)을 없애고, 5(五痳 : 다섯 가지 종류의 임질)을 낫게 하며, 오줌을 잘 나가게 하고, 5가지 황달을 낫게 하며, 소갈을 멎게 한다.’라고 적혀있다.

입안이 마르고 눈이 충혈되고, 붓고 아픈 것, 얼굴까지 벌개지는 주사비(酒齄鼻 : 딸기코), 문둥병, 창양(瘡瘍 : 피부병)을 낫게 하고 지충(地蟲 : 땅속의 구더기)의 독을 없앤다.

치자의 속 씨를 쓰면 가슴속의 열을 없애고, 껍질을 쓰면 피부의 열을 없앤다. 보통 때는 생것을 쓰고, 허화(虛火 : 양 볼이 벌게지고 미열이 나고 손바닥이 달아올라 가슴이 답답한 증상)에는 동변(童便 : 남아의 소변)에 축여 새까맣게 되도록 아홉 정도 볶아서 쓰고, 피를 멈추는 데는 먹같이 태워서 쓴다. 폐와 위를 시원하게 하려면 술에 우려서 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치자의 주 효능은 열을 끄고 화()를 내리는 청열사화(淸熱瀉火 : 열기를 식히고 화기를 제거하는 것)하는 약이다. 그리고 뜨거운 피를 식히는 양혈(凉血)작용을 하며, 몸이 허()한데 가슴은 답답하면서 잠이 오지 않는 허번불면(虛煩不眠) 증상에 사용하고, 황달(黃疸), 소갈(消渴), 안구충혈, 토혈(吐血), 코피, 피가 나오는 이질(痢疾), 소변이 잘 나오지 임병(淋病), 오줌에 피가 나오는 요혈(尿血), 외상(外傷: 피가 뭉쳐 멍이 든 경우는 밀가루에 치자의 물을 반죽하여 상처 부위 붙인다.)에 까지 여러 질병에 응용된다.

효능이 좋은 치자를 이용하는 방법들은 차로 마시거나 술을 담가서 먹는다. 차로 마실 때는 물 2에 치자 20 ~30g(10개 정도)을 넣어서 30분 정도 끓여서 수시로 마셔도 좋다. 술을 담글 경우 치자 500g에 담금주 2를 부어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3개월간 숙성시킨 후 드시면 된다. 반주로는 소주잔 1잔 정도 마시면 신경이 안정되고 불면증 및 피로 해소에 최고의 식품이 될 것이다. 그 외에 단무지 만들기, 치자물 넣어 밥 짓기, 반죽할 때 등 쓰임새가 많다.

아이들이 단것과 기름진 것을 많이 먹어 입맛을 잃었을 때 치자 한 개를 으깨어 뜨거운 물을 부어 우린 다음 윗물만 받아 입을 적시듯 먹으면 입맛이 돌아온다.

일반적으로 치자는 큰 부작용은 없는 편이지만 과다(過多) 복용했을 때는 위의 기능이 저하되기도 하며, 복부가 팽창하며 현기증 현상이 나타낼 수 있다. 치자는 찬 성질의 음식이기 때문에 평소 혈압이 낮거나 몸이 찬 사람은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치자 열매(사진 제공 강신근)
치자 열매(사진 제공 강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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