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주
교육학박사, 시인
초등교육코칭 연구소장

조문주
조문주

예쁜 여인네를 업어서 강을 건네준 스님이 있었다. 따르던 상좌중이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고결한 스님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 그 말에 스님이 호통을 쳤다.
“너는 아직도 여인네를 등에 업고 있느냐? 나는 배를 버린 지 오래 됐다.”
이 법문은 늘 내게 화두로 남아 있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리라 했지만 버리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한 여교사에게 얼토당토 않은 모함을 받은 적이 있었다. 세탁기에 걸레를 1년 내내 빨아서 널어 챙겨주었는데 감사는커녕 11월 쯤 찾아와서 자기 걸레를 어디다 감추었냐고 내 반 아이들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앗, 경계다.’ 라며 얘기를 들어주고 그 자리를 모면하기는 했다. 다른 동료교사들에게서도 위로를 받았다. 그래도 억울한 심정을 벗어 날수가 없었다. 십년 마음공부가 허사가 되었다. 그녀는 늘 나를 따라 다녔다. 틈만 나면 나에게 파고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가 어찌 그럴 수가 있나?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 해주었는데...’ 그녀에게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랜드캐년의 광대한 풍경 속에서 또 그녀를 만났다. 나는 비싼 돈 들여서 미국 여행을 하는데 지는 공짜로 나를 따라 다녔다.
‘참 질기다. 네가 여기까지 따라 왔니?’
여인네를 업어 준 스님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상좌스님처럼 나는 그녀를 내 등에 업고 다녔다.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리라 했는데 배를 버리기는커녕 배를 등에 지고 다니는 내가 있었다. 이걸 망념이라고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버리기가 잘 안 되었다. 억지로 지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생각이 났다. 정작 그녀는 학교를 떠났고 나와 연락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고 있는데 나만 괴로운 것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친구에게 하소연을 해봐도 시원하지가 않았다. 위로 받으려고 수다를 떨었다가 더 힘들어지는 나를 만나기도 했다.
‘망념아, 나랑 친구하자.’
그 일 이후 1년 만에 망념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다. 생각이 떠오르는 걸 성가시게 여기고 억지로 없애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각이 나는 원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런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제 하루에 이 망념이 몇 번 떠오르는지 헤아려보기로 했다. 어느 날은 10번 정도 생각나다가 어느 날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갔다. 세탁기를 볼 때 또 생각이 나는 나를 보며 웃음이 났다. 막상 생각나는 횟수를 헤아리려 찾으니 어디로 갔는지 묘하게 그냥 지나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녀는 내 마음에 오락가락 하였다. 마음공부를 좀 한다고 우쭐대는 나를 시험하는 스승이 그녀였다. 그녀가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그녀를 끌어당겨서 내 속에 가둬두고 괴로워하는 망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가벼워졌다.
스님이 여인을 업어 건네주는 장면을 아무 마음 없이 지나치기란 쉽지 않다. 지나간 일이라고 잊으라 하지만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장면에 얼마나 끌려 다니는지 마음을 챙기고 공부하는 계기를 삼기란 더 쉽지 않을 것이다. 생각을 안 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힘들어짐을 알 수 있다. 배를 등에 업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나는 마음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럴 수도 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준 배에게 감사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나에게 큰 공부를 시켜준 그녀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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