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놈 참 영판 제 할애비 닮았다. 그래, 씨 도둑질은 몬 하는 기라.”

오랜만에 고향 온 젊은 내외 사이에 쪼작 쪼작 걸어오는 귀여운 아이를 보고 이웃 할머니가 하는 말이다.

아이구야, 너거 집 딸이 또 그 어려운 공무원시험에 합격 했다며? 큰 딸은 선생질 하고. 아이들마다 우짜모 저리 다 잘 될꼬. 남의 자식이라도 참 좋다.”

아요! 니는 세상 울 일은 없겠다. 우리 집 자석들은 눌로 닮아서 저런지 모르겠다. 지독하게도 머리도 없는 모양이제. 집을 못 떠나 사니.” 하며 두 집 어미 아비의 유전력을 빗대어 보기도 한다.

핏줄은 생명 유지와 성장에 중요한 작용을 함은 물론 각 개체 고유의 특징을 나타내게 할 뿐만 아니라 유전자를 통해 다음 세대에게 유전되는 강력한 힘을 가지기도 한다. 생명체의 엄청난 마력을 지닌 핏줄, 인간에게는 12km나 되는 혈관이 있다고 한다. 도보로 하루 60km를 걷는다 해도 2천 날은 걸어야 될 거리의 긴 혈관이다. 그 속에 담긴 수많은 유전력. 어느 때 어떤 것들이 나타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더러는 운 좋은 집안이라 어미 아비 좋은 점만 쏙 빼 닮아 대를 이어 성공하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집안에 운이 없으려니 나쁜 점만 골라 닮았다고 한탄하기도 한다. 하는 일 마다 잘 안되고 하는 짓 마다 말썽이니 때려죽이고 싶다는 마음뿐이라고.

그렇다. 오죽하면 그러고 그랬을까. 거목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잎가지에 흘러 떨어질 만큼이면 될 것이지 큰 몸집에까지 흠뻑 적시려는 욕심은 과욕이듯. 얼굴은 핥아 놓은 개 죽사발처럼 말끔하게 생겨도 속마음은 남의 것 빼앗아 먹고 훔쳐 먹는 시커먼 허욕에 차 있고. 처량한 듯 맑은 목소리로 자신을 알리는 뻐꾸기도 어미노릇 한 번 해 보지 않고 남의 집에 알을 낳아 남이 제 새끼 길러 내는 꼴을 보고도 대를 이어 같은 삶을 살아가니 그것도 알 수 없는 유전력이다.

 

더군다나 핏줄은 씨족이나 종족의 근본이 되기도 한다. 핏줄도 흐르고 흘러가니 각 성씨에도 시조로부터 현세에 이르기까지 정통성이 있고 없고를 두고 다툼이 생기기도 한다. 후손이 생기지 않아 후처를 들이기도 하여 대를 잇기도 하고 때로는 양자를 들이기도 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부모를 잃고 자신이 누구의 후손인지도 누가 붙여 준 성씨인지도 모르고 자란 뒤 그 고충은 과연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젠 우리나라도 단일민족은 크고 작은 대양의 파도 속에 밀물과 썰물 되어 섞여 흩어지고 말았다. 같은 씨족이라 고집하기도 할 수도 없는 다민족 국가로 바뀌고 말았다. 순수 혈통은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당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남성 제일주의만이 순수혈통을 이어가리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이젠 제발 혈통문제로 다투지 말고 함께 어울려 살자. 피부색이 다르면 어떻고 문화가 다르면 어떤가. 밝은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행복 쫓아 우리 모두 즐겁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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