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코앞에 두고 어렵사리 진주성 가시나무 열매로 배를 채운 청설모 한 쌍이 뜯겨진 북장대 터에서 볕 쪼이를 하던 중 경절사를 내려다보고 주고받는 이야기다. 유난히 질투가 많은 암컷 청설모가 늘 멋만 부리는 수놈에게 하는 말.

어제 저녁에는 몇 번 집에서 잤니?”하며 넌지시 간밤의 행적을 묻는다. 평소 외유가 잦다는 소문에 관심도 눈도 안 돌렸지만 진주성에 유등 구경 왔다가 은은한 등불 빛에 비친 멋진 수놈의 모습에 넋이 빠졌던 터. 당시 어떻게 하다 보니 다섯 번째 아내라도 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후회스럽다. 세월 가니 외로워지기만 하다는 넋두리 한 마디를 날렸는데. 능청스런 수놈.

~ 그래 간밤이 추웠구나. 그 얘긴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며칠 전에 본 자료 이야긴데 여기 발아래 경절사가 뜯겨나갈 것 같은데 그대 생각은 어떤고?”하고 말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며 귀깃을 앞발로 쓰다듬는다.

그 말 들은 암놈, 갑자기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당황스러웠지만 아는 게 없어 되묻는다.

경절사가 사찰 아니야?”하고 칼칼하게 답한다.

듣고 있던 수놈이 어이가 없었는지 화난 감정을 짓누르고 잠깐 머뭇거리다가

그래, 아직 잘 몰랐구나. 지루할지 모르지만 내가 본 참고 자료를 확 줄여서 이야기 해 줄게 들어보렴.

경절사는 고려 초 거란에 끝까지 대항하다 순절한 충절신 하공진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한 곳이란다.”

~ 이곳이 참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네?”하고 간밤의 수놈 행적은 깜빡 잊고 있는 듯 말하자

그래, 나도 그 점에 분통이 터진다.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 하자면 동서문명교섭 연구가 최정간과 동방학 연구소장 허권수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고려 6부의 으뜸벼슬인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 하공진(~1011, 현종2) 장군은 고려 8대왕 현종조 때에 거란군 40만 대군이 침입하여 나라가 위기를 맞았을 당시 나라에 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외교담판을 지어 이역만리 타국 거란 땅에 자신이 자청하여 볼모로 잡혀가 거란의 황제 성종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심장과 간을 빼내어 먹히기도 했다. 는 치욕적 삶으로 나라를 구한 그 분의 영정을 모신 경절사를 진주성 밖으로 옮기고 조선 말기에 생겨 잠시 존재했던 경상도 관찰사 선화당(집무실,감영)을 꼭 경절사를 침역(侵域)하여 지어야 한다는 진주시의 주장은 누가 들어도 *넉장거리 할 일이 아닌가.” 하고 분에 못 이겨 나무 가지를 물어뜯는다.

, 이러면 별 어려운 점 없잖아. 진주시에서도 경절사를 피해서 선화당을 지으면 더 좋지 않나? 아니, 하씨 대종회를 감동받게 설득할 자신이 그리도 없을까?

그 터에 하공진의 동상은 못 세워 줄망정.”공간기억력이 부족한 청설모 부부싸움의 근원을 잊은 채 어제 묻어 두었던 먹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러 떠난다.

*넉장거리 : 네 활개를 벌리고 뒤로 벌렁 나자빠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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