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어진 사슬 - 2
으스름한 저녁, 지서가 들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골목 어귀에 서있던 할매가 불쑥 나타나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얘기를 좀 하잔다.
어두운 골목이었지만 지서를 본 짧은 순간 할매의 얼굴에서 반가운 표정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으로 보아 골목 어귀에서 사람 눈을 피하여 오랫동안 지서를 기다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할매 아잉교?”
“아이고 태완이 아부지요, 인제 일 마치고 오능교?”
“예, 할매는 여기서 뭐 하능교?”
“태완이 아부지를 기다렸심니더.”
“내를 요?, 와요?”  “그기...”  할매는 선뜻 말을 못한다.
태완이 아버지가 부드럽고 인정이 많으며 좋은 일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배척하는 기운이 역력하고, 더욱이 태완이 아버지는 마음이 약하여 마을 사람들이 안 된다고 난리를 칠 경우 마음과는 달리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되든 안 되든 일단 부딪혀 보자는 마음에서 태완이 아버지를 만나 직접 부탁해 보기로 하였다.
“내게 무슨 할 말이 있심니꺼?,
그라마 말 해 보이소” 하더니
“아, 내 정신 좀 봐라, 저녁은 묵었심니꺼?”
“예, 묵으면 됩니더.”
“선이네가 이사를 가고 나서 밥은 어떻게 해결합니꺼?”
“냄비 하나하고 그릇 몇 개, 그리고 약간의 쌀하고 김치 쪼매를 남겨 놓고 갔기 때문에 밥은 잘 묵고 있심니더, 신경을 써 줘서 고맙심니더”
“그나저나 객지 생활을 할라니까 마이 힘들지요?”
“그래도 태완이 아부지가 많이 생각해 주고 챙겨주는 덕분으로 그럭저럭 잘 지냅니더”
“내가 뭘..., 도와 드리지도 몬하고...”
“자, 집에 같이 가서 밥이라도 묵읍시더.”
“아니예, 여기서 잠깐 이야기 하고 지는 그만...”
말은 그렇게 하지만 연신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불안한 내색을 하는 것으로 보아 다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볼까 봐 두려워하는 눈치다. 지서가 앞장을 설 경우 쉽게 따라 올 것 같다.
“여기서 무신 말을 할 낍니까?, 집에 가서 밥을 묵으면서 말 하입시더.”
지서가 앞장을 서서 집으로 향한다.

“아직도 날씨가 많이 덥지요?, 이놈의 날씨, 처서가 지났는데도 식을 줄을 모릅니더.”
지서는 잘 익은 수박 한 쪽을 집어 할매에게 권하고 자기도 와작 베어 먹는다.
할매는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너무 부르다고 하면서 지서의 처가 내온 수박을 먹지 않으려고 하다가 지서의 강권에 마지못해 수박 한 쪽을 집어 들지만 선 듯 입으로는 가져 가지 않는다.
“아이고 마, 이래 단 수박은 처음 묵어 본데이, 할매도 얼른 묵어 보이소, 정말로 달고 시원합니더.”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고 지서가 느스레를 떤다.
“예... , 고맙심더, 밥을 하도 달게 묵어 다른 걸 먹고 싶지도 않네요”
“그래도 얼른 한 입 베어 보이소, 아참,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는데 무신 말 입니꺼?”
할매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손에 들었던 수박도 내려놓으면서 어둠이 내려 버린 하늘을 바라보다가 지서 동생이 살던 집 쪽을 바라본다.
지서도 할매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대충 짐작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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