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어진 사슬 - 2
처로부터 할매가 방을 구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할매의 눈길이 자꾸 동생 집 쪽을 향하는 것으로 보아 방 얘기를 하려고 뜸을 들인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할매는 어렵게 말을 꺼낸다, 역시 지서 동생이 살던 빈집을 빌려 달라는 것이다. 지서는 이미 할매의 마음을 읽었고, 할매가 집을 빌려 달라고 하면 빌려 줄 생각을 하고 있었으므로 뜸도 들이지 않고 쉽게 승낙을 한다.
며칠 동안 고민을 하던 문제였는데 말 한마디를 채 다 꺼내기도 전에 너무 쉽게 승낙을 해 버리자 오히려 할매가 딴지를 건다.
“마을 사람들이 내를 쫓아내려고 하기 때문에 태완이 아부지가 집을 빌려 주기가 어렵다는 것도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괘안캤심니꺼?”
지서는 입안 가득 모여 있던 수박씨를 하나씩 훅훅 불어 마당 가운데로 날리면서 대답을 한다.
“마을 사람들이 무슨 상관인교, 내가 내 집을 빌려 주는데, 그건 상관 업심더, 다만...”
“예, 다만...?”
지서가 ‘다만...’이라는 전제를 달자 할매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 진다.
“내는 요,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는데, 할매가 이겨 내겠능교?”
“지서 아버지만 승낙을 해 주면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겨 낼 수가 있심더, 처음 이 마을에 들어 올 때 보다야 더 심하겠심니꺼.”
할매는 처음 이 마을에 들어 올 때 당한 구박이 떠올랐는지 자기도 모르게 ‘후우’하고 긴 한숨을 쉰다.
“그리 하이소, 마침 집이 비어 있으니까 잘 됐지요. 할매가 나물 캐러 안 갈 때는 우리 태완이도 좀 봐주고요, 아 이노마가 인자 뽈뽈 걸어 다니면서 어떻게 사고를 치는지, 우리가 들일을 나가도 통 불안한데 할매가 옆에 있으마 아도 봐주고 더 좋지요.”
그러면서 할매의 안색을 살핀다
“이기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잉교,
동네 사람들이 뭐라고 하더라도 지서는 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할 것이라고 마음먹었고, 할매에게도 큰맘 먹고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일러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뭐라고 하면 “돈이 없어 비어 있는 집이라도 세를 주어 용돈 정도라도 벌어야 한다, 내 집을 내가 세 주는데 너거 들이 웬 참견이냐..”라고 당당하게 버티고 나갈 것이라고 마음을 먹었고, 그 뜻을 할매에게 전달하였다.
할매가 지서 옆집으로 이사 온다는 사실이 알려 지자 득달같이 동네 이장이 찾아 와서 재고를 하라고 하였고, 마을 아낙들도 연이어 찾아 와서 지서와 지서아내를 귀찮게 하였다.
이튿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작심을 하고 지서의 집을 찾아 왔고 지서가 말을 듣지 않자 삼일 째 되는 날에는 이장을 비롯하여 마을에서 어른이라고 자처하는 노인 서너 명 지서의 집으로 찾아 와서 세를 주지 말라고 반 협박조의 말을 하자 지서는 작심하듯이 말을 하였다.
“알겠심더, 동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하모 안 해야지요.”
지서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노인들을 한 바퀴 휘 둘러 보더니
“그런데 내가요, 할매한테 보증금하고 월세를 받기로 했거든요, 그라마 내가 못 받는 돈을 여기 계신 어른들이 나누어 내 주이소. 내가 돈이 필요해서 내 집을 세놓는데 동네를 위해서라고 세를 못 놓게 할꺼면 그 돈을 동네에서 대신 내 주어야 지요. 내만 손해를 볼 수 없지 않십니꺼?”
하는 한 마디로 찾아 온 사람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지서는 마을 사람들이 아무 말도 못하고 꿀먹은 벙어리가 되자 결정적인 한 마디를 한다.
“여기 계시는 분들중에서 할매의 도움을 받지 않은 분이 있으면 손들어 보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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