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조문주
교육학 박사
초등교육코칭 연구소장

시인 조문주
시인 조문주

 

“선생님, 나는 이제 더 이상 못 참아요. 참을 만큼 참았다고요. 참는데 이골이 났지요. 이혼을 해야 숨통이 트일 겁니다. 으이그 답답다.”
코칭연구소로 한 분이 찾아와서 속을 털어놓는다.
“젊어서는 자식들 때문에 내가 참고 살았지. 그란데. 인자는 못 참겠다.”
아들 둘 딸 하나인데 막내아들이 눈에 밟혀 더 참고 살았단다. 아무리 힘들어도 막내아들을 품에 안으면서 다 녹여내었다고 한다. 2년 전 막내 아들의 혼사를 치루었다.
“막내 며느리에게 내가 참 잘 해줬지. 속이 아파도 참고 반찬 다 해다 주고 옷 사다주고 그랬어. 내가 할 만큼 했어.”
그랬는데 막내며느리가 집을 나가버렸다고 한다. 시어머니께 잘 못한다고 효자아들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친정에 가버렸단다. 그 아들집에 들어가 밥하고 빨래해주면서 살았는데 아들마저 자기에게 버럭 소리를 질러 집을 나왔다고 한다. 집에 가면 남편이 소리 지르고 아들네 가면 아들이 소리를 지른다. 자기 인생이 왜 이런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지들한테 얼마나 참고 잘 해주었는데 지들이 나를 어찌 그렇게 대할 수가 있나?”
나이 들어서도 무조건 자기 말이 최고라며 아내를 무시하는 영감 때문에 못 참겠다며 이혼을 할 거라고 한다. 자식도 소용없고 혼자 살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참고 사느라 얼마나 힘드셨는지요.”
손을 잡아주니 펑펑 운다. 실컷 울도록 토닥여주었다. 털어놓고 싶은 마음을 받아주고 열심히 잘 살아왔음을 인정해주니 속이 시원하다고 한다.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만 쳐 주었다. 필자의 시어머니께 맞장구 쳐주곤 했기에 익숙한 편이다. 그만하시라고 하는 것보다 한술 더 떠서 같이 험담을 하기도 했다. 열 번 들었어도 처음 들은 말처럼 인정해주는 것이다. 같은 말 좀 그만하라고 부정하기보다 그냥 들어주기만 했다.
“참는 마음을 남편이 못 알아 주셨나보네요?”
“내가 대꾸를 아예 안 하니 지는 더 성이 났을거구만. 내가 못나서 그런 영감하고 사는 거지.”
자기의 주장을 강하게 하는 버럭 시아버지와 참고 희생하며 살아온 시어머니, 이런 시집살이를 하며 살아온 어머니의 푸념을 들어온 아들도 힘이 들었을 거다. 서로를 비난하고 부정하는 가족 규칙 속에 살아온 남편에게서 건강한 의사소통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아들바라기 하는 시어머니의 친절에 막내며느리도 부담이 많이 갔을 것이다. 대물림이다. 며느리의 가출로 인해 시어머니는 더 속이 상한다.
6개월 정도 만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속이 다 풀린다며 용타고 하신다. 그저 맞장구치면서 들어주기만 한 것이다. 마무리쯤에 지혜롭게 참고 자기 의견 말하는 법을 안내했다. 무조건 참으려 하기보다 자기감정을 적당히 표현하고 부탁하는 의사소통방식을 연습했다. 나이만큼 굳어진 습관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집에 가서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천천히 풀어놓게 되면서 속이 조금씩 풀어졌다고 한다. 잘 참다가 한 번에 화를 쏟는 습관이 줄어들면서 이제는 이혼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며 많이 웃는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왔다며 좋아라 한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과 가난의 역사 속에서 참고 버티며 살아온 우리 어머니의 한을 좀 들어주는 것이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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