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최초의 사당 강민첨 장군 탄생지 은열사를 찾아서
진주 최초의 사당 강민첨 장군 탄생지 은열사를 찾아서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2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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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병부상서 강민첨 장군 탄생지
진주의 성씨 강姜, 하河, 정鄭
“은열사는 1021년 진주 백성들이 세운 진주의 최초 사당이다”
구주대첩의 주역 고려공신 병부상서 은열공 강민첨 장군
은열공殷烈公 위업偉業 숭모崇慕, 천년을 이어오다

강씨(姜氏)하씨(河氏정씨(鄭氏)씨와 더불어 진주·진양의 3대 성으로, 진주 지방의 토성(土姓)이다.

강씨는 진주시 옥봉 소재 은열사의 은열공 강민첨 장군, 하씨는 진주성 내 충절공의 경절사 하공진 장군, 정씨는 성내 진양부원군 정신열 장군으로 세 사람 모두 고려와 거란과의 전쟁 당시 전승의 공을 세운 장군으로서, 진주의 3대 성씨의 시조와 파조로 배향되고 있다.

본지는 최근 진주하씨 경절사와 진주정씨 청계서원 탐방취재에 이어, 진주 옥봉동 은열사의 강민첨 장군의 공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본지 편집국은 은열사를 탐방하여, 고려공신 병부상서 은열공 강민첨 장군을 배향한 은열사와 장군의 공적, 그리고 1000년 동안 계승하여 봉행하고 있는 향례,다례 등에 관련하여 진주강씨 은열공파 강춘근 대종회장, 강진욱 사무국장, 강석중 전 시의원에게 그 유래를 들어 본다.

은열사 전경(경상남도기념물 14호)
은열사 전경(경상남도기념물 14호)

 

은열사는 1021년 진주 백성들이 세운 진주의 최초 사당

은열사殷烈祠는 고려 현종 때 병부상서를 지낸 은열공 강민첨姜民瞻 장군의 탄생지로 1021년 진주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은열공의 충절과 백성들에게 베푼 은혜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1000년 도시 진주 최초의 사당으로 1976년 경상남도기념물 14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은열공은 현종 때 고려를 침범한 거란군 60만 대군을 자주(지금의 평안남도 자산군) 구주(지금의 평안북도 구성군) 등지에서 물리쳤으며, 이 공으로 조정에선 은청흥록대부銀靑興祿大夫 응양상장군鷹揚上將軍 상주국上柱國 천수현天水縣 개국남開國男 식읍食邑 300로 제수하였다. 은열공이 받은 식읍은 진주 서쪽인 현재 하동군의 악양 화개 적량 고전면 지역으로 진주지晉州誌에 의하면 진주 백성들의 조세부담이 과중하다는 것을 듣고 은열공이 받은 식읍300호를 진주목에 기증을 해 진주 백성들의 조세부담을 덜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1021년 은열공이 세상을 떠나자 진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은열공의 탄생지인 개경향開慶鄕에 은열사를 세워 매년 춘추로 제례를 봉행하면서 은열공의 은혜를 갚고자 했다.

은열공 강민첨 장군 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53호)
은열공 강민첨 장군 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53호)

 

고려공신 병부상서 은열공 강민첨 장군

은열공 강민첨開慶鄕 장군은 963(고려 광종 14) 1129일 진주의 옥봉산 아래 개경開慶 마을에서 태어났다. 현재 진주시 옥봉남동 은열사가 있는 곳이다.

은열공은 15세까지는 진주향교에서 학문을 부지런히 연마하였으며, 고을 청소년에게 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 진주에서 살다 우방산(현재 하동군 옥종면 두양리 소재)에 터를 잡아 조상을 위한 원당願堂이란 집을 짓고, 여기서 문무를 연마하였다. 지금 우방산 집터에는 은열공이 심었다고 하는 은행나무가 남아 옛 역사를 전하고 있다.

43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장사랑將仕郞이라고 하는 첫 벼슬에 올랐으니, 해동공자라고 불리는 문헌공 최충崔沖과 함께 급제하였다고 전한다. 은열공은 문과에 급제를 하였지만, 문무관직을 두루 역임하여, 문무를 겸비한 관료로서 인정을 받는다.

48세 때(1010, 현종 1) 애수진장隘守鎭將에 임명되었다. 애수진隘守鎭은 지금 함경남도 고원군의 서쪽이다. 이해 11월에 거란 왕이 기병 40만명을 이끌고 고려를 침범하여 고려의 행영도통사行營都統使 강조康兆를 죽이고 승승장구하여 평양성에 당도했다.

애수진장으로 있던 은열공은 휘하장졸을 거느리고 평양성으로 달려와 성안에 남은 장병과 함께 9일간 성을 사수했다. 거란 왕이 평양성에서 시일을 많이 허비하다가 고려왕을 놓칠 것이라는 판다에서 평양성을 포기하고 주력부대를 이끌고 개경으로 갔으나 왕은 9일간의 여유로 무사히 나주羅州로 몽진할 수 있었다.

49세 때(1011, 현종 2) 도관시원외랑都官試員外郞을 제수받고 비어대緋魚袋를 하사 받았다. 비어대는 관복이다. 어대는 물고기 모양의 시표를 넣어두는 주머니를 가리킨다.

50세 때(1012) 5월에 동여진東女眞이 영일迎日청하淸河 등지에 쳐들어오자 문연文演이인택李仁澤조자기曺子奇 등과 함께 부주방어사部州防禦使로서 주군병州郡兵을 독려하여 격퇴하였다.

강춘근 진주강씨 은열공파 대종회 회장(왼쪽), 강진옥 진주강씨 은열공파 사무국장(오른쪽)
강춘근 진주강씨 은열공파 대종회 회장(왼쪽), 강진옥 진주강씨 은열공파 사무국장(오른쪽)

 

거란의 3차 침입, 강감찬 장군과 구주대첩의 주역

56세 때(1018, 현종 9) 태복경太僕卿을 지내고, 이해 거란 장수 소배압이 60만 대군을 거느리고 침입하였는데, 이른바 거란의 3차 침입이다. 이때 현종은 강감찬을 상원수로 삼고 장군을 원수로 삼아 208천명의 군사를 주어 방어케 하였다. 고려군은 영주寧州의 홍와興化에 진을 치고 소가죽牛皮으로 큰 강을 막고 있다가, 적이 이르자 막은 물을 한꺼번에 틔워 수장시키는 이른바 우피작전으로 적의 예봉을 꺾었다. 이 싸움의 패배로 용기를 잃고 남진하던 거란군은 자주(지금의 평남 자산) 남쪽에서 뒤쫓아온 강민첨 장군의 공격을 받고 큰 손실을 입었다. 계속 연주 위주 등지에 적을 추격하여 승승장구하다가, 마침내 구주의 반령 뜰에서 대파하니, 적은 겨우 수천명만이 목숨을 부지하여 압록강을 건너갔다.

이것이 우리나라 전쟁사에 길이 빛나는 구주龜州대첩이다. 이처럼 은열공은 구주대첩의 주역임에도 불구하고, 강감찬 장군의 공적에 가리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7세 때(1019, 현종 10) 2월 은청흥록대부銀靑興祿大夫 응양상장군鷹揚上將軍 상주국上柱國에 발탁되었다. 8월 초 6일 동지중추밀원사同知中樞密院事, 1216일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 20일 추성치리익대공推誠致理翊戴功臣에 봉해졌다.

58세 때(1020, 현종 11) 316일 병부상서兵部尙書, 1217일 현릉 개장의 공으로 금자흥록대부金紫興祿大夫에 제수되었으며 이듬해인 59(현종12) 되던 해 1112일 세상을 떠났다. 묘소는 충청도 예산현 감천동이다. 별세 후 3일 동안 조회를 하지 않았으며, 그의 공로로 아들 강단姜旦에게도 녹자祿資를 가하였다. 태자태사에 추증되었으며, 문종 때 공신각에 올랐다. 조선의 태종도 공의 위대한 공적을 다시 거론하고 우방산과 두방산의 땅 약3000정보를 내렸다. 은열공이 세상을 떠난 지 약 1,0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도 진주를 중심으로 한 은열공의 후손들은 공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매월 초하루, 보름으로 제사를 올리고 있다.

생신향례生辰享禮: 매년 음력 11월 29일 봉행, 2012년부터 진주의 기관장인 진주시장, 진주시의회 의장, 진주경찰서, 경상대학교 총장 등이 헌관을 맡아 봉행했다.
생신향례生辰享禮: 매년 음력 11월 29일 봉행, 2012년부터 진주의 기관장인 진주시장, 진주시의회 의장, 진주경찰서, 경상대학교 총장 등이 헌관을 맡아 봉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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