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이어진 사슬 - 3

태완이가 젖먹이 시절 할매는 아예 태완이를 자기 친손자인양 씻기고, 먹이고, 재우면서 키워 주었다.

결혼한 여자들에게는 누구 엄마’,‘누구 할매라고 부르거나 시집오기 전 친정의 지명을 따서 청주댁’, ‘대구댁등의 택호를 부쳐 부르는 관습에 따라 부산에서 왔으므로 부산댁이라는 택호를 붙였으나 할매가 완강히 거부하여 부산댁은 취소하였다.

그 후 누군가가 할매에 대하여 아무것도 아는게 없으므로 무명(無名, 혹은 無明)으로 부르는 것이 어떠냐고 하여 무명댁으로 불리다가 그냥 무명할매가 되어 버렸다.

무명할매라고 택호를 붙여 주는 것은 할매를 마을 사람으로 받아 준다는 배려였다.

할매가 남의 짐이 되지 않으면서 마을 일 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진심을 보인 결과 할매는 마을의 토박이 대접을 받게 되었다. 행여 아침에 밥 짓는 연기가 나지 않거나 밤이 되어도 방에 불을 켜 두지 않으면 이웃이 할매 집을 찾아가 문안을 살피는 정다운 이웃이 되었다.

언젠가 마을 사람들이 무명 할매의 이름이 부정적인 느낌으로 지은 것이니 잘못을 반성하는 의미에서도 이름을 바꾸어 부르자고 하여 여러 가지 이름이 나온 끝에 약초 할매라고 지었는데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할매가 자신은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뭣 하나 남기는 것도 없고 이름도 남을 일이 없으므로 그냥 무명할매가 좋다고 하여 그대로 무명할매로 부르기로 하였다.

 

9.

운명 - 1

태완이가 집 뒤 허름한 곳간의 멍석 위에 쪼그리고 숨어 숨을 죽이고 떨고 있는데 다시 왁자지껄한 소리가 난다.

아이고 마, 이 할마시가 어딜 가서 사람 애를 이래 태우노

이장영감의 목소리다

건데 이렇게 밤늦도록 소식이 없는 것은 처음이제? 정말로 사고가 난건 아닐까?”

서울에서 장사를 하다가 실패를 하고 마누라와 같이 낙향하여 논 몇 떼기로 농사를 짓고 사는 천씨의 목소리다.

그래 약초를 캐다가 멧돼지에게라도 물려 갔으면 우짤끼고?, 그라고 세상이 하도 험하니까 할매가 돈이 많다는 것을 알고 누가 돈을 뺏을라꼬 해꼬지라도 했으면 우짜겠노

배 건너 배씨 아저씨 목소리다. 배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장이 나무란다.

참 씰데 없는 소리를 한다, 우리 마을이 얼마나 조용하고 사람살기가 좋은 마을인데 고래 험한 말을 하노, 말이 씨가 된데이.”

바로 이 때 한 무리의 동네 여자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오는가 싶더니 태완이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점심 무렵에 할매가 약초 캐러 간다고 올라갔는데, 혹시 누가 내려오는 걸 본 사람이 있소?”

아 그걸 와 이제 말 하노?”

동네 이장이 나무라듯이 말한다.

아제, 아제가 언제 나한테 물어나 밨는기요?, 나도 이제사 할매가 없어졌다는 걸 알았능기라요

태완이 엄마의 볼멘 소리로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태완이 엄마의 과민한 반응에 분위기가 깔린다는 것을 느낀 지서가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하여 일부러 큰소리로 외친다.

그라마 산에는 올라갔는데, 누가 내려오는 걸 본 사람이 있소?”

잠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친다.

, 나도 무맹할매가 산나물 캐러 갔을 거라고 짐작은 했고마.”

진주에 나물이나 약초를 팔러 간 것은 아니제?”

얼마 전에 진주 약초 팔러 갔다 왔으니까 진주에 가지는 안 했을 끼구마.”

아 그라마 밤이 되면 날씨도 아직 차가운데 정말 사고가 난 데이, 산에 갔다가 어디 낭떠러지에 떨어졌으마 밤새  사고가 난데이 우리 더 지체 하지 말고 산으로 찾으러 가 보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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