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를 돌아볼 때, 남북한 간의 가장 큰 동상이몽은 한반도의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부와 통일부는 두드러지게 남북화합과 교류협력을 주장한다. 심지어는 지금까지의 남북한 간의 군사적 대치관계를 허물어뜨리는 개별적인 북한관광까지도 고려할 것인 양 언사를 남발하고 있다.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에 나선 민간인 박왕자씨의 피격사건은 이미 다른 나라 얘기가 된 것 같다. 완강해야 할 국방부조차도 분위기에 휩쓸려 우왕좌왕하고 있으며, 직업적으로 프로정신으로 나서서 지적해야 할 야당 정치인들은 아무 역할이 없다. 일반 국민들만이 이러한 정부의 행태를 극도로 우려하고 있지만 동족이나 민족이란 큰 명분에 묻혀 결사항전의 반발은 하지 않는 편이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동족과 민족에 너무 동포애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한은 민족이란 심장 뛰는 용어를 이데올로기로 삼아 대남적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지 오래되었다.

민족이란 용어는 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반계급적, 반투쟁적 성격으로 분류하여 아주 제한적으로 사용하였다. 김일성은 1953년 8월의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민족적 사명”이라고 처음으로 민족을 거론하였다. 이후 북한은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에 포함된 민족대단결, 1980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설방안의 일환으로 제시한 최고민족연방회의 등 큰 차원의 의미를 전달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민족이란 낱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같은 민족을 갈라서 쳐내야 하는 계급혁명의 과정에서는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1980년대 후반부터 북한은 김정일 후계체계 확립과 대남 열세 만회를 위한 필요성으로 인해 갑자기 민족이란 용어를 적극적으로 들고 나왔다. 1986년에는 7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주장하더니 1989년과 1991년에는 우리민족주의와 참다운민족주의 등을 내세워 계급보다 민족이 중요하다면서 민족대단결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대남통일전략이 변화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족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켜 한국사회를 마비시키고, 경제적으로는 한국의 경제지원을 떳떳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영특한 전략이다. 이 전략에 가장 대표적으로 먹혀든 것이 2000년의 6.15 남북정상회담이다. 공동선언 제1항에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나가자고 버젓이 삽입하였다. 이후부터 남북관계는 특수관계가 되었으며, 북한은 아예 ‘우리민족끼리’를 통전전략의 수단으로 공식화하면서 외세 공조를 반민족책동이라며 한국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반미투쟁, 남남갈등 조장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한 것은 역대 정권들의 동포애 때문이었다. 우리의 동포애 속에는 동족, 민족에 대한 계급과 성별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북한의 동포애는 순전히 정치적인 것으로 우리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간의 대남침략을 통해 우리 민간인을 무고하게 살상한 수많은 악행들이 이를 증명하며, 동족과 민족이라는 말은 필요할 때 내뱉는 수사에 불과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의 증언과 각종 문건들에 의하면, 동물농장 같은 북한의 각종 정치수용소에서는 같은 동족이라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원래 동족, 민족 개념은 역사적 개념이면서 이데올로기적인 성격이 짙어 자연스레 사람들의 인식을 지배하게 된다. 마르크스는 이데올로기를 ‘허위의 의식’으로 경멸하면서도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지배이데올로기가 된다고 보았다. 북한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기능을 잘 활용하고 있지만 문제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한국이 북한의 민족이데올로기 공세에 말려들거나 스스로 부화뇌동하여 놀아난다면 나라의 체제가 흔들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남북한이 정치,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상태에서 제 처지도 잊고 민족, 평화와 같은 감성적인 용어에 스스로 붕괴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다.

북한동포들을 옥죄고 있는 북한독재세력은 핏줄 적으로는 동족이지만 정치관, 경제관, 사회관, 철학관 및 인륜적으로는 우리와 적대하는 대칭점에 서서 동족을 훼손하는 기생충 같은 존재다. 이들은 마치 살인범들이 일시적으로 사회에서 격리되듯 일시적으로 동족의 범주로부터 격리될 필요가 있다. 이 정권의 주요 인사들처럼 김정은 정권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겠다고 두둔하거나 한술 더 떠서 ‘뭐가 잘 못됐느냐’고 외치며 싸고돌아야 될 것인지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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