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운명 - 1
“그래, 그라자, 퍼뜩 가 보입시더.”
“건데 무명할매가 어디서 약초를 캐노?”
“얼마 전에는 대밭골 쪽에서 약초를 캤는데 요새는 찬새미 쪽으로 많이 간다고 들었소.”
곤이 할배 목소리다.
“아 그라마 우리가 세 쪽으로 나눠서 올라가 봅시다. 한쪽은 배탄골로 가고, 다른 쪽은 찬새미, 그라고 마지막 조는 소멧동으로 가서 찾아보는데 길 따라만 가지 말고 길을 중심으로 흩어져서 약초가 있을만한 곳을 훝으면서 올라 가입시더.”
그러면서 동네 사람들은 각자 조를 편성하고 손전등을 준비하는 등 한참 동안 부산을 떠는 중에 지서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건데 태완이 이노마는 어디 가서 안 보이노, 내 이노마 한테 아침에 나무하라고 내 보냈는데 야가 찬새미 쪽에서 나무를 하니까니 혹시 할매를 봤을 수도 있는데.”
“태완이 가가 어젯밤에 병식이 군대 간다꼬 동네 아들하고 모이가 읍내에서 밤새도록 술을 마셨는데 혹시 집에서 자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내 집을 한 번 둘러보고 오께요.”
태완이 엄마 목소리다.
태완이 엄마가 집에 들어와 마당의 불부터 켜고 이 방 저 방을 살펴보다가 뒷간 쪽 돌아가는 곳에 세워 둔 태완이의 피 묻은 지게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어둑살이 끼였지만 피가 묻은 곳은 비릿한 피 냄새가 나고 또 번들거리기까지 하므로 쉽게 눈에 띄었다.
“애고머니나, 이거 지게에 묻어 있는 게 피 아이가?,”
태완이는 지게에 묻은 피를 지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지게를 수돗간과 가까운 곳에 세워두고 손과 얼굴, 옷에 묻은 피를 씻어 내던 중 동네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고 급히 피하는 바람에 지게를 치우지 못했다.
눈이 휘둥거래 진 태완이 엄마는 지게를 살피다가 태완이가 해 온 장작더미가 아직 지게 위에 그대로 있는데 그 장작 위에서 피 묻은 낫을 또 발견하였다.
지게는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는데 지게 작대기의 손잡이 부분에도 피가 떡칠이 되다시피 묻어 있다.
낫의 손잡이 부분에도 많은 피가 묻어 있는 것으로 보아 태완이가 다쳐 묻은 것 같지는 않고 태완이가 이 낫으로 무엇인가를 공격한 것이 틀림없다.
그 생각까지 미치자 태완이 엄마는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할매 집과 붙어 있는 담장으로 가서 살그머니 지서를 부른다.
“보소, 태완이 아부지요”
“와 그라노?”
태완이 엄마는 더욱 목소리를 낮춰
“큰 소리치지 말고 살짝 와보소.”
“아, 이 여자가 와 그라노?, 지금 할매를 찾으러 산에 올라가야 하는데...”
태완이 엄마가 역정을 내듯이 말하지만 목소리는 태완이 아버지 지서만 겨우 들을 수 있을 정도이며,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다른 사람이 들을까봐 경계하는 눈빛이므로 지서도 눈치를 채고 발걸음을 재면서 담장 쪽으로 다가가자 태완이 엄마가 다시 소근거리듯 목소리를 낮춘다.
“담장 너머로 말고 대문을 돌아서 집으로 퍼뜩 와 보소”
지서는 담장으로 다가오려다 말고 뒤돌아서서 무명할매의 대문께로 간다. 그리고 이어서 태완이 엄마가 있는 곳으로 터벅터벅 다가가는데 태완이 엄마는 지서가 오는 것을 보고
“태완이 아부지요, 태완이 지게가 피범벅이 돼 있소, 그라고 지게작대기도 피가 묻어 있고, 낫은 피 칠갑이오, 도대체 무신 일이 나긴 난 것 같은데 짐작이 안 가요”
태완이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서는 이미 상황 파악을 마쳤다.
워낙 피가 많이 묻어 있어 만질 수조차 없을 지경이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