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5년 차를 맞은 여권에 위기감이 팽배하고 있다. ‘미니 대선’인 4월 재보궐 선거가 지나면 곧바로 차기 대선 정국이다. 지는 해인 ‘현재 권력’과 뜨는 해인 ‘미래 권력’이 충돌하는 국면에 접어드는 셈이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5년마다 반복되는 이 게임의 치명적 변수는 대통령 지지율이다. 핵심은 심리적 마지노선(40%) 붕괴 이후 나타날 지지도 30%마저 무너질 경우 비상계획도 무용지물로 전락되고 만다.
정권 재창출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는 ‘대통령 지지도 30%’였다. 민주화 이후 치른 역대 대선에서 지지도 30% 안팎을 유지한 쪽은 정권 재창출에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대통령 지지도가 한 자릿수로 전락한 정권은 어김없이 정권을 뺏겼다. 제14대 대선 이후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정권은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였다. 반면 김영삼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각각 진보와 보수진영에 정권을 내줬다.
문민정부 문을 연 YS는 임기 말 가장 오랜 기간 한 자릿수 지지도를 기록한 대통령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따르면 YS 지지도는 임기 말인 1997년 2분기 때 7%로 곤두박질쳤다.
한때 83%까지 치솟았던 YS는 집권 5년 차 초반에 터진 ‘한보 비리’로 휘청,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보그룹 사태 수사 중 소통령으로 군림했던 차남 현철 씨는 뇌물수수 및 권력남용 혐의로 체포됐다. 한보 비리 사태가 권력형 게이트로 확전되면서 YS는 대국민 사과 성명까지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한보를 비롯해 기아자동차 등은 연쇄 부도를 겪었다.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에 반발한 노동계는 연일 총파업으로 맞섰다. 9룡이 맞붙었던 신한국당 경선 이후엔 이인제 후보가 탈당, 부산·경남·울산 분열을 초래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로부터 탄핵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3분기 33% 선을 유지하던 박 전 대통령 지지도는 국정농단 게이트가 최고조에 다다른 2016년 11월 1주 차 조사에서 ‘5%’로 뚝 떨어졌다. 한 주 만에 지지도가 수직 하강하면서 박근혜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도가 무너졌다고 회고했다. 이듬해 치러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1.1%의 득표율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24%를 제치고 9년 2개월 동안 지속한 보수 정권에 종지부를 찍었다. 홍준표후보는 성완종사건에 발목이 잡혀 선거운동을 제대로 할수 없는 처지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
막판까지 지지도 급락만은 막았던 DJ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정권 연장에 성공했다. 두 정권도 레임덕 징후인 권력형 게이트가 발발하면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다만 DJ와 MB는 박 전 대통령처럼 자신의 비리 의혹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호남과 대구·경북이란 ‘강력한 지역 구심점’도 있었다.
DJ의 집권 5년 차 1∼4분기 지지도는 33%였다. MB는 이보다 낮은 25%로 집계됐다. MB는 지지도 30%를 하회했지만, 당시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근혜 등판으로 판을 바꿨다. 여의도 한 분석가도 “보수 지지층은 박근혜 당선을 사실상의 정권교체로 인식했다”고 부연했다. 당시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했던 박 전 대통령의 포지션이 결과적으로 진보진영의 정권 심판론 프레임을 무력화 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차 두 자릿수 지지도를 유지하고도 정권을 뺏겼다. 집권 5년 차 1∼4분기 당시 노 전 대통령 지지도는 27%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와 ‘부동산 대란’ 등이 맞물리면서 대통령 권력을 보수 정권에 내줬다. 10년간 정권을 잡았던 진보 정권에 대한 피로감도 정권 교체에 한몫했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렸던 MB는 200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격, 48.7% 득표율로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26.1%를 눌렀다.
역대 대선 결과를 종합하면, 지지도 방어는 정권 재창출의 필수 공식이었다. 옵션은 현재 권력을 대체할 ‘강력한 미래 권력의 출현’이다. 지지도 30% 안팎 방어와 대체재 확보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정권 재창출은 사실상 물 건너간다는 얘기다. 관전 포인트는 집권 5년 차를 맞은 ‘문 대통령의 지지도 추세’와 ‘포스트 문재인 구축’ 여부다.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심리적 마지노선(40%)은 무너졌다. 레임덕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간 당·정·청이 한목소리로 주창했던 원팀 균열이 대표적이다. 민심 이반이 가팔라지는 레임덕은 반대편의 공격이 아닌 내부 분열이 방아쇠 역할을 한다.
역대 정권마다 ‘대통령의 영이 서지 않는다’는 우려가 나오는 순간, 레임덕의 빗장은 어김없이 풀렸다. 문 대통령의 사과에도 불구하고 김두관 의원 등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것도 내부 균열에 해당한다. 이낙연 대표조차 “현안을 넓게 보라”며 윤석열 탄핵론에 선을 그었지만, 강경파들은 연일 탄핵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강경파의 득세로 당·청 투톱 자제령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 자체가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재촉할 수 있다는 의미다.
뿐만아니라 문 대통령은 ‘추미애 후임’에 친문계 박범계 민주당 의원을 임명했다. 환경부 장관에는 노동운동가 출신인 한정애 민주당 의원을 꽂았다. 캠코더 인사를 통해 ‘정책의 전환은 없다’는 시그널을 보낸 셈이다. 진보진영조차 우려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밀어붙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의 동의 없이 밀어붙인 인사는 26명에 달한다. 이는 이명박(17명)·박근혜(10명) 정권보다 훨씬 많다. 이 같은 논란에 책임을 지고 청와대 참모진 3인방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김상조 정책실장·김종호 민정수석은 사의를 표명했지만 김상조 정책실장은 유임된 상태다.
문제는 진짜 레임덕 시작인 ‘당·청 지지도 역전현상’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당 지지도보다 5% 안팎 높다. ‘마의 5%’ 지지대가 무너질 땐 여권 전체가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 일각에서 미래 권력 전면 배치를 통해 청와대에 쏠린 주도권을 당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여권의 고민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래 권력의 구심점 약화도 문재인 정부에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핵심은 파죽지세인 윤석열 검찰총장 지지도에 일격을 당한 여권 미래권력 투톱이 ‘강력한 메기효과’를 발현할 수 있느냐다. 2002년 대선과 201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그 역할을 했다. 평생 지역주의에 맞선 노 전 대통령은 인터넷 열풍과 함께 2040세대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다. 경제민주화 기치를 앞세운 박 전 대통령은 보수진영 전체의 변화를 이끌었다.
추·윤 갈등 이후 여권 내부에는 이낙연 대세론과 이재명 대안론에 대한 회의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 당직자는 “연말 정국을 거치면서 이 대표 리더십에 대한 물음표를 표시한 인사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 지사의 경우 친문 직계와 여전히 거리가 멀다. 친문 직계가 ‘민주주의 4.0 연구원’ 발족을 통해 제3후보 찾기에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 30%대마저 무너질 땐 친문계조차 분화할 것으로 보인다. 범주류 일각에선 ‘상왕’ 이해찬 전 대표의 막후 정치에 기대를 걸지만, 레임덕 국면에선 킹메이커의 새판 짜기 효과도 반감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기회를 노리고 있는것같기도 하므로 문재인 대통령지지율로본 향후 정세변화는 예측하기 힘들정도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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