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운명 - 1

지서는 이 상황이 무얼 말하는 것인지 짐작하려고 해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아니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짐작의 밑둥치를 잘라 버렸기 때문이다.

옆에서 마누라가 방정을 떤다.

무명할매가 찬새미 쪽으로 약초 캐러 간다고 갔는데, 얼마 안 되서 태완이가 찬새미로 나무하러 갔고마

, 씰데없는 소리 좀 하지마라, 그기 무슨 상관이고?”

지서가 버럭 고함을 지른다. 지서의 고함소리는 그러나 파르르 떨고 있다.

혹시, 우리 아가 할매... ...

짐작의 끝을 파지 않으려고 하는데 방정맞은 여편네가 기어이 짐작의 끝을 끄집어낸다.

태완이 엄마도 하도 엄청스런 말이라 말을 하면서도 잘못 했다는 생각이 드는지 끝을 맺지 못한다.

,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씰데 없는 소리 하지 마래이.”

내가 뭐랬능교, 와 고함을 지르고 그라요.”

태완이 엄마는 불안스런 마음에 공연히 지서에게 역정을 지른다. 그러나  역정은 입속을 맴돌 ,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지서는 그러면서 얼른 부엌으로 달려가서 불쏘시개를 하려고 쌓아 둔 신문지 몇 장을 들고 와서 헛간 입구에 있는 지게와 지게작대기, 낫을 조심스럽게 신문지로 싸서 집 뒤편의 헛간으로 쓰고 있는 어둑한 구석에 갖다 놓고 지게에 묻은 피를 닦아 낸다.

그러면서 지서는 그런 행동을 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묻은 신문지는 부엌 아궁이에 집어넣는다. 지게와 지게 작대기, 낫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면서 지서의 손에도 끈적이는 피가 묻는다.

지서는 손에 묻은 기분 나쁜 피를 씻어내기 위하여 수돗간으로 갔을 때 수돗간에도 온통 피비린내가 난다.

피비린내는 지서로 하여금 울컥 구토를 하게 만든다.

비릿하게 퍼져 있는 피비린내는 죽음의 냄새였던 것이다.

태완이가 수돗간에서 피 묻은 손을 씻었음이 분명하다.

지서는 산채만큼 무거운 죽음의 그림자가 머리로, 가슴으로 짓눌러 내리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지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 가위눌린 사람처럼 겨우 하는 신음 소리를 내더니 수돗간과 붙은 담벼락을 짚고 겨우 몇 발자국 옮기다가 땅 바닥에 털썩 주저 앉는다.

아무 생각도 없다. 텅 빈 머릿속에 하얀 뭉개구름만 떠다니고 있다.

아직 무명할매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으므로 무명할매가 죽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피는 태완이가 산노루나 토끼를 잡은 피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애써, 애써 최악의 상황을 떠 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20여 년 전의 교통사고 사실이 자꾸 떠 오른다.

길바닥에 내 팽겨진 아버지와 아들, 딸이 피 칠갑이 된 얼굴로 도와 달라고 애원하는 모습, 그러더니 그들의 머리에서 벌건 뿔이 돋아나고 귀신의 형상으로 바뀌면서 지서에게 같이 가자고 손을 내민다. 지서는 눈을 감아 버린다.

눈을 감자 이번에는 피를 흘리는 귀신들이 태완이를 데리고 간다.

태완이는 그들의 손을 잡고 깊은 산골짝으로 서서이 들어가고 있다.

지서는 불행이 자신의 가족에게 찾아 왔다는 생각을 하다가 불행의 시작은 2년 전 자신이 교통사고를 내고 3명의 가족을 죽였을 때 이미 잉태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되살아난 악연에 몸서리를 친다.

그러나 아직 무명할매가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확인된 게 없다.

지서는 공연한 망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도리질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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