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 위원장이 ‘벼랑 끝 전술’을 들고 나왔다. ‘안철수바람’이 불 조짐을 보이자 김 위원장은 ‘3자 대결 불사’를 선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자체적으로 후보를 내겠다는 뜻이다. 그러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야권 분열은 필패’라는 정치권 속설을 거론하며 쓴소리가 나온다.
안철수 대표를 달래고 얼러왔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결국 폭발했다. 1월12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3자 구도로 뛰어도 해볼만하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3자구도가이뤄져도 승리를 확신한다”고 답했다.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안철수 대표가 국민의당 후보로 독자 출마하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가 모두 나오는 3자 대결 불사를 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역사적 사례’까지 내밀며 자신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강조했다. 1995년 초대 서울시장 선거 사례를 들면서 3자구도에서 초반 여론조사 1위를 달리던 무소속 박찬종 후보가 양당 체제 한계에 부딪쳐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패했다는 것이다. 지금상황에 대입해보면 안대표가 박찬종 후보가 그랬던 것처럼 치고 나오고 있지만 기존 양당체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결국은 가장 지지율 높은 정당 후보가 승리를 거머쥔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당 일각에서는 그때 상황하고는 여당과 야당의 조직력 자체가 완전 다르다며 서울은 구청장 25명 가운데 24명이 더불어 민주당이고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모두 민주당인데 무슨 재주로 국민의힘당이 이길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지 도무지 이해할수 없다며 김종인 위원장의 판세분석을 평가절하 했다.
그러나 지상욱 국민의힘 여의도연구원장은 1월 13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중도층과 떠난 집토끼들이 돌아오고, 30-40대들도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며 3자구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원장 얘기처럼 국민의 힘은 ‘3자구도 가능성’에 대한 명분을 정당 지지율에서 찾고 있다. 국민의힘 정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나가고 있으니 ”안철수쯤이야“를 이제 외쳐도 된다는 것이다.
선거 경험이 많은 국민의힘 한 다선의원은 “당 내부에서는 그래도 제1야당인데 이렇게 밀리면 안된다”는 절박감이 있다. 오세훈 나경원 등 인지도 높은 후보들이 속속 출사표를 던지면서 3자구도 바람을 일단은 일으켜놔야 한다. 하다하다 안돼서 마지막에 안대표에게 후보자리를 넘겨주는 때가 오더라도 지금은 후보 헌납이 아니라 자력갱생을 외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3자대결을 통한 ‘국민의힘 자강론’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주를 이루는 모습이다. 안대표가 야당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야당 표를 나눠먹을것이라는게 중론이기 때문이다. 현대 정치사에서 분열한 야권이 승리를 따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2017년 대선에서도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등 ‘보수야권’ 후보가 난립한 속에서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이 대세론을 형성하면서 승리를 쉽게 따냈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직후 대선에서도 야권이 분열,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3김’이 모두 나오자 여당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가 청와대로 입성한것만 보더라도 3자구도는 민주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김종인 위원장이 ‘벤치마킹 사례’로 내세운 1995년 첫 민선 서울시장 선거 사례를 지금의 ‘안철수 바람’에 적용 시킬수 있는 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No)’라는 답이 나온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은 국무총리 출신인 정원식 후보, 제1야당인 민주당에서는 한국은행 총재출신 조순 후보, 그리고 무소속으로 박찬종 변호사가 나왔다. 김위원장이 말한것처럼 초반 선거전에서 박찬종 변호사가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제1야당 민주당의 조순 후보였다. 당시 3자구도에서 무소속 후보의 초반 기세가 무서웠지만 결국 제1야당 후보가 여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으니 지금 구도를 그대로 대입하면 국민의힘이 안철수 바람을 잠재울수 있는 것은 물론, 여당까지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 당시와 같다고 할 수 없다는게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원로 정치인들의 한 목소리다. 조순 후보가 승리한 원동력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조순 후보가 당선된 것은 당시 김영삼 정부 지지율이 떨어지는 과정 속에서 정계 복귀 과정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충청을 꽉 쥐고 있던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합세, 조 후보를 전폭적으로 밀어줬기 때문이었다. 당시만해도 카리스마형 정치인들이 많은 표를 움직일 수 있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이른바 DJP연합이 조순후보 당선의 1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박찬종 변호사도 지난 12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고하며 “조순과 나와의 싸움이 아닌 DJP연합과 나의 싸움이었다. DJ와 JP는 내가 서울시장에 당선될 경우 다음 대선에서 자신들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될것으로 봤다” 면서 강력한 거물 정치인들의 개입이 판세를 뒤집었다고 했다. 국민의힘 한 재선의원은 1995년이 아닌 다른 모델을 봐야 한다고 했다.
“1995년 사례가 아니라 야권의 대통합이 이뤄졌던 2011년 서울시장 선거를 보는 것이 맞다.”며 “무려 4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자랑하던 안철수 후보가 한자릿수 지지율에 머물렀던 재야 박원순 변호사에게 후보를 양보하고 이후 박변호사가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 박영선 후보와의 단일화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야권 대통합이 이뤄졌다. 기세가 등등해진 야권 통합 후보는 53.4%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집권 여당의 나경원 후보(46.2%)를 꺾었다. 야당은 흩어지면 죽는다.”며 무조건 뭉쳐야 이긴다고 했다.
안철수 대표는 1월 14일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야권의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이 하면된다. 저로 단일화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비판하고 정권교체를 간절히 원하는 국민의 뜻에 따르자는 것” 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당이 지난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았고, 자신도 대권 출마를 포기하는 등 야권 승리를 위해 양보를 했다는 사실을 강조한 뒤 “그런데도 누군가는 제게 더 양보하고 더 물러서기를 요구하고 있다”고 언급. 국민의힘 경선에 들어갈 뜻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 힘 경선 참여가 아닌 박원순, 박영순 경선처럼 제3지대에서 시민후보를 뽑는 방식으로 단일화하자는 메시지를 국민의힘에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 4.15 총선때 황씨와 유씨가 당대당 통합을 한답시고 찬스를 놓친것처럼
국민의힘은 후보 단일화를 둘러싼 안대표와의 지루한 줄다리기 속에서 “실망표”가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안대표와의 갈등이 자칫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면서 야권에 대한 기대를 접는 유권자들이 늘어나면서 여권에 유리한 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안철수가 변했다”는 ‘변화파’와 “옛날 그대로다”라는 ‘수구파’가 나뉘어 연일 갑론을박을 벌이면서 내부 균열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변화파는 안대표와의 단일화에 긍정적이고 수구파는 단일화에 부정적이 되면서 서울시장 선거는 또 물건너 가는 것 같다고 탄식하고 있다.
하태경의원은 1월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김종인 위원장, 장진영 전 바른미래당 대변인 등이 안대표를 공개 비판하는 이유에 대해 “과거에 안대표가 안초딩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지금은 대딩 정도 많이 성장했다. 성장한 안철수를 저는 좀 가까이에서 봤기 때문에 어느정도 인정하고 있다” 며 ‘안철수가 변했다’에 한표를 던진다고 했다.
국민의 힘 지도부는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제3지대’ 안철수 대표에게 내줄 경우, 이후다가올 후폭풍을 두려워하고 있다. 안대표가 제3지대에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가 된다면 다가올 대선에서 또다시 당내 후보가 아닌 제3지대 후보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 김종인 위원장의 당권장악에 흠집이 생길까봐 염려하는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일단 시간벌기 전략을 쓸것으로 보인다. 안대표의 지지율을 상당기간 박스권에 가둬놓는다면 당내 경선 바람을 통해 국민의힘 후보 지지율이 올라가고 이를 통해 단일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접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 같으나 야권단일화가 안되었을때에는 어느모로보나 여당이 이길 수밖에 없는데도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무슨 속셈으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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