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운명 - 2
태완이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웅크린 자세 그대로다.
“태완아, 무신 일이 있었나?, 엄마한테 말해 보그래이.”
태완이의 호흡이 더 거칠어지더니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흐느낌을 쏟으면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 앉는다.
“어무이요, 내가 사람을 죽있심더, 내가 할매를 죽있심더, 내 이 손으로 할매를 죽있다 아입니꺼.”
“뭐라카노, 네가 와 할매를 죽이노, 네가 할매를 죽있다는게 참말이가?
태완이 엄마는 그 소리에 벌떡 나자빠져 엉덩방아를 찧는다.
“예, 아부지, 나는 인자 우째야 합니꺼?”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현실이 된다.
“할매가 확실히 죽었나?, 니가 확인을 했나?”
“예, 살 수가 없심더, ... ...”
태완이는 마지막에 큰 바윗돌로 할매의 머리를 짓이겼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기가 막힌 상상이 최악의 현실로 다가 오다니 믿어지지가 않는다.
초롱초롱하던 하늘의 별이 일시에 와르르 땅에 떨어져 버린다.
태완이 엄마는 태완이의 목을 껴안고 흔들면서 울부짖는다.
“이놈아 뭣 때문에 사람을 죽이노, 진짜로 할매를 죽있나?, 할매는 니를 키워 줬다 아이가, 그 착한 할매가 뭘 잘못했다고 죽이노”
지서는 망연자실하여 별이 다 떨어져 버린 빈 하늘, 그래서 더 캄캄해져 버린 하늘을 바라보며 넋두리를 내 뱉는다.
“운명인기라, 참 끈질긴 운명인기라”

10.벽
그 두려움의 시작이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할매의 말을 거역하면 안 된다는 막연한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고 태완이의 신체가 성장함에 비례하여 그러한 강박의 크기도 커져 갔다.
그리고 할매로 인한 강박은 할매와 태완이만 아는 비밀이 되어야 한다.
만약 할매집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거나 할매 집에 가지 않겠다고 한 말이 할매의 귀에라도 들어가면 태완이는 반드시 처벌을 당하여야 한다. 할매집에서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그에 관한 말을 하면 안 된다.

태완이가 장난을 치다가 다친 적도 여러 번 있다.
한 번은 방에서 마루로 나가다가 미끄러져 다리를 삔 적이 있다.
그 마루는 시골의 보통 나무판자로 만들어져 있고 약간은 까칠하기 때문에 절대로 미끌어 지는 곳이 아닌데 그날은 분명히 무엇인가가 미끄러지는 것이 발려 있었다.
태완이가 미끄러져 울음을 터뜨리자 할매가 달려 와서 발목이 삐었다고 하면서 주물러 주었는데 실상은 미끄러져서 다쳤다기 보다는 치료를 빙자하여 제끼고 주무르고 하면서 오히려 더 심하게 아파졌다.
간간이 할매가 발목이 아프냐고 물으면 아프지 않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괜찮다는 대답을 하였다.
태완이에게 그런 대답을 유도한 할매는 무거운 물항아리를 갖다 달라, 디딜방아에서 고추를 빻아야 하므로 디딜방아를 밟아 달라고 하여 하루 종일 아픈 발목을 사용하게 하였다.
저녁이 되자 발목은 남산만큼 부풀어 올랐으며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자 그제서야 할매는 발목에 열이 나므로 열을 빼야 한다고 하면서 발가벗긴 후 우물에서 갓 길어 온 차가운 물을 온 몸에 끼얹어 초주검 상태로 만다.
우물물을 뒤집어쓰고 초주검 상태가 되면 굳어 있는 몸을 풀어야 한다면서 아픈 발목을 사정없이 문지르고, 부기를 뺀다고 침을 놓고, 쑥뜸을 한다면서 콩알만한 약쑥 서너개를 아픈 발목 위에 올려놓고 성냥으로 불을 붙여 태우는 고통을 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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