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바닷물이 얼었었다.
그 가장자리 얼음 사이로 빼쪼롬이 입을 낸 파도의 이야기다-

대나무 숲처럼 곧게 세워 몰려 든 갈치의 몸부림과 그 위 눈독 올려 맴도는 갈매기 떼 아우성에 잠 못 이룬 파도. 졸다 깨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오늘따라 떠오르는 햇살이 맘에 들지 않는가 보다. 하지만, 시간이 아까워 눈비비고 추슬러 말문을 연다.

 

지난여름의 긴 빗줄기에 나의 온 몸은 늘어지고 풀어져 버렸네요.

짙푸른 춤사위 가르며 온 몸을 솟구쳤던 돌고래는 물론 그 흔했던 오징어 명태까지

무엇이 무서웠는지 도망가고 말았네요. 따끈한 모래 결도, 밤새도록 잠 없이 달그락 달그락 노래하던 몽돌들의 콧노래도 내 눈 앞에 수 없이 흘러드는 마스크들의 시위에 입을 닫은 여름이다.

태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흘러내린 욕정의 원색, 누구도 감히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단풍의 춤사위까지도 내 몸에 비춰 보았지만, 그 조차 볼 수 없어 한 없이 쓸쓸하고 고독했어요. 그토록 시린 가슴 속에는 그 동안 생각에서 묻혀버린 그리운 그림자도 살며시 왔다 갔겠지요. 늘 내 앞에서 묵직하게 서서 눈웃음치던 갯바위도 검은 마스크를 쓴 채 말이 없었어요.

심심하지 않느냐고? 외롭고 쓸쓸하지 않냐고?”묻지도 않았어요. 도리 없이 하늘만 처다 보고 혼자 중얼거렸지요.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고 이리도 고독한 내 마음 뉘가 아리오? 내 숨이 열려 있는 한, 늘 내 마음 가운데에 자리 한 마음속의 그 그림자! 그대 찾아 수평선 저 너머까지라도 달려가 샅샅이 찾을 것이오.” 하고 바다 끝 하늘 높이 날고 있는 갈매기에게 손짓하며 넋두리 하네.

내가 찾는 그 님, 어디서 찾을꼬? 이렇게 힘든 세상 언제 밝은 아침 올꼬?”···

 

그 때 마침 불어오는 실바람에게 또 애걸(哀乞) 한다.

나 힘없는 네게라도 부탁하네, 이 파도가 가진 슬픔과 괴로움을 받아 줄 이 있거든 속히 좀 전해 주게. 꼭 남극의 흰수염고래가 아니라도 좋다. 하다못해 내가 무서워 도망치는 새우나 어설프게 옆닥걸음 걷고 숨는 새끼 게한테라도 좋다. 오죽하면 덩치 큰 흰수염고래가 그 작은 크릴새우를 먹고 명 붙이고 살겠는가. 내 그의 마음 충분히 이해하리라.”하고는 구름에 가려진 반짝거리는 피부 드러내어 가녀린 실바람에게 목 놓아 전한다.

산호 숲 헤고 노는 노랑 빨강 물고기야! 때 모르고 날뛰는 이 놈의 몸부림에 다치지나 않았나? 밀려드는 마스크 무섭기도 하지만, 신문지에 싸인 것은 풀어보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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