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의 기부왕' 동광장학회 이사장 달마사 주지 해일스님
해인사 전 주지 동광당 명진대종사 유훈으로
은사의 뜻 이어 받아 13년간 5억 이상 기부

달마사 주지 해일스님
달마사 주지 해일스님

 

동광장학회는 해인사 전 주지 명진대종사(1939~1998년)의 유훈에 따라 제자인 달마사 주지 해일스님이 은사의 뜻을 받들어 지난 2009년부터 '동광장학사업'이란 이름으로 16회 동안 5억원 이상의 장학금과 성금을 매년 기부하여 지역사회에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는 장학사업단체이다.
2021년 올해로 13년째 되는 '동광장학회'는 그동안 기부한 장학금과 성금만 무려 5억8천여만원에 이른다.
달마사(주지 해일스님.대한불교 조계종 해인사 포교당) 내에 소재한 동광장학회는 매년 1~2회에 걸쳐 중,고,대학생과 어려운 이웃에게 장학금과 성금을 기부해 왔는데 "학생들은 부모에게 효도는 물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를 주기 위하여" 장학금과 성금으로 매년 5000여만원을 지급해 왔다.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해일스님은 은사이신 동광당 명진스님을 추모하고 일타스님의 가르침으로 실천하고 있을 뿐이라며 "사회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학생들이 학업을 통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그 유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동광당 명진 대화상은
동광당 명진 대화상은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행정직무를 맡아 오다가 해인사 교무국장과 초무국장을 거쳐 1982~84년 해인사 주지를 지내며 대규모 중창불사를 이뤄냈고 길상암과 함께 부산 사리암, 대구 청룡사, 의정부 삼은사 등을 창건하기도 했다.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 주지를 맡아 대가람으로 가꾸며 평생 염불수행 정진한 스님이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명진 스님은 54년 계룡산 신원사로 출가한 뒤 57년부터 해인사에서 주석해왔으며, 해인사 주지 후 산내암자 길상암에서 고아를 매년 20명씩 3백여명을 길러내고, 원력과 행해가 원만하여 가람수호에 전념하시며, 화두일념으로 청아한 염불소리로 중생들의 고뇌를 덜어주셨다.
세수 59세로 홀연히 열반에 든 동광당(東光堂) 명진(明振) 대화상은 스님이 남긴 정재(淨財)로 장학기금을 만들어 해인사 학인 승려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한편 명진 스님은 옷을 맞춘일도 없고 식당에 들른 적도 없다는 것은 승가에서 널리 알려진 일화로서, 직접 옷을 짓고 어디 갈때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고 하는 등 청정의 생애가 돋보이는 것은 한평생을 철저한 무소유와 봉사를 실천하셨기 때문이었다.
장학회 이사장 해일스님은 어려운 환경의 관내 중.고.대학생과 저소득 가정의 자녀들에게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원해 왔으며 장학회 활동 외에도 개인적으로 소외 계층을 수시 발굴.지원하는 등 근검절약과 나눔의 공적이 시민들의 귀감이 되어 『2019년 사천시민상 선행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동광장학회에서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동광장학회에서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하고 있는 모습

 

"저는 비록 도둑질을 합니다만..."
신도들이 낸 시줏돈을 모아 5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장학생 선발은 달마사 신도회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추천 장학생들은 주로 부모가 없거나 편부, 편모 가정의 학생들이었고, 장애를 가진 학생에서부터 늦깎이 대학생 등 형편이 어려운 학생과 이웃에게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해 온 달마사 해일스님.
그는 자신이 부처님의 뜻을 전하고 살지만 그렇다고 부처님의 온전한 뜻대로도 살지 못한다면서 자신의 삶을 "반쯤 도둑질"이라고 표현했다.
해일스님은 동광장학회란 이름과 관련해 "20여년 전 입적한 은사스님의 호가 동광이었다"며, "생전에 장학재단을 만들고 싶어 하신 그 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말했다.

달마사, 승가대학 시 해일스님의 별명 '달마'가 유래
이러한 선행을 베풀어 온 동광장학회 이사장 해일스님은 24살이 되던 해 출가했다. 이를 두고 해일스님은 "전생부터 세운 원력에 의해 자연스레 출가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스님은 "여담이지만 출가하기 전 점을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중'상이라고 하더라"며 "과거는 알 수 없지만 어떠한 인연들이 이어져 출가하게 된 것이 아닐까"라며 미소를 보였다.
해일스님은 출가한 뒤 합천 해인사 승가대학에서 5년간 공부했는데, 이때 해일스님에게 '달마'란 별명이 붙었다. 주변 스님들이 우락부락한 생김새와 중국식 인사처럼 손을 자주 모으는 모습을 보고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해일스님은 "잘생겼으면 달마라 불리지 않았을 건데, 우락부락한 생김새와 중국식 인사처럼 손을 자주 모으는 모습 때문에 주변에서 달마라고 별명을 지어주더라"고 말했다.
해일스님은 자신의 별명이기도 한 '달마'의 우락부락한 모습을 두고 "원래 달마는 매우 미남이었다. 헌데 길에 커다란 구렁이가 죽은 채 널브러져 있어 그것을 치우기 위해 잠시 유체이탈을 했다. 워낙 커다란 구렁이라 무거우니까 몸속으로 들어가 옮기려 한 것이지. 헌데 그 사이 선인이 나타나 비어있던 달마의 몸이 마음에 들었는지 갈아탄 뒤 떠나버려 결국 몸을 바꾸고 살았다"고 설명했다.
해일스님은 달마와 관련된 이야기 중 "불법을 깨닫기 위해 달마를 찾아간 혜가는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팔을 잘랐다. 팔이 떨어진 자리에는 파초가 돋아나 떨어진 팔을 받쳤다. 이에 혜가는 믿음을 증명 받고 달마의 제자가 되었다"는 내용으로 그가 '달마'란 존재를 얼마나 각별히 생각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달마사가 된 이유도 달마와 해일스님 간의 원력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해일스님은 부산 전포동 보현사, 인천 용화사, 거창 연수사 등을 거쳐 2001년 현재의 달마사인 산성사로 오게 됐는데, 출가했을 때부터 붙여진 달마에 의미를 두어 "'달마사"로 이름 고져 지었다고 한다.
달마사 해일스님을 보좌하여 장학회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대식 장학회장은 "2009년 부터의 관내 중,고,대학생 들에게 지급하는 장학금 지급 외에 2017년도부터는 저소득가구 중 생계가 어려운 가구를 선정하여 추석과 설 명절에 성금을 전달하는 보시행을 실천해 오고 있는 등 합계 5억 8천여 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동광당 명진대종사 추모복지장학법회에서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한 후 주지 해일스님과 신도회 임원의 기념촬영(코로나19 이전 사진)
동광당 명진대종사 추모복지장학법회에서 장학금과 성금을 전달한 후 주지 해일스님과 신도회 임원의 기념촬영(코로나19 이전 사진)

 

"나와 남을 위한 공부" 당부
그리고 한대식 회장은 장학금을 전달하는 자리에서 "명진대종사의 유훈에 따라 본 사찰의 해일스님이 이를 실천하고 있으며, 그 뜻에 따라 동광장학회를 만드셨고 신도들이 낸 시줏돈을 모아 5억 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게 되어, 비록 작은 돈이지만 이를 계기로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일꾼으로 자라나는 후학들을 위하여 기부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이웃들에게 작으나마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리.대담: 편집국장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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