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나보니

대문 밖을 서성이는 바람을 갑자기 만나니 서늘한 느낌이 든다. 정이 없는가보다. 할 말도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간밤에 잘 잤냐고 물을까. 아니면 어디 가냐고 물어볼까. 아니, 그게 아니라 요즘 무엇 하냐고 말을 걸어 볼까. 그도 아니라면 왜 남의 집 앞에서 얼쩡거리냐고 나무라기도 할까? 머뭇머뭇 서먹서먹 경계심이 동원되다가 시간이 감에 따라 상대와의 간격이 유지에서 차츰 좁혀지는 듯한 느낌에 가슴의 두께와 온도도 변해 간다. 그렇다. 바람은 산들바람이 좋다. 잔가지와 나뭇잎에 생기를 전하는 그런 바람. 햇살과의 스킨십으로 인한 즐거움이 있고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힘도 있으며, 그 사이 예쁜 몸짓과 노래로 즐거움을 주는 새까지 날아드니 흥겨운 분위기에 무슨 말이건 건네고 싶은 마음이 생기니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산들바람을 봄바람으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있듯 그의 부드러운 듯한 몸짓 안에는 잔뜩 세운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한 순간 방심하는 사이, 그놈의바람이 때로는 버릇없이 날뛰다가 기물을 파손하고 불필요하게도 구름을 불러들여 물장난을 치기도하니 마음도 옷도 몸도 살림살이도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크게 버릴 수가 있으니 이 또한 괴물이 아닌가. 그런데 걔는 기분에 따라 찬바람이 되기도 따뜻한 바람이 되기도 하여 살아 있는 숨들을 긴장시키기도 살맛나게 하기도 하니 이를 무엇이라 칭할꼬.

 

이 놈은 참 간사하기도 하다. 시기와 때에 따라 차림새와 모양이 달라지며 그의 형태가 유행처럼 되돌림 해가며 변하기도 하니 이를 버리자니 아깝고 모른 체하자니 그 또한 씁쓸한 기분이 드니 이를 어쩌랴. 힘들게 일한 자에게 불어 드는 바람은 영약이며 게을러 일하지 않는 이에게는 겨울 찬 기운으로 깃드니 말이다.

 

하지만, 같은 이름이지만 형상이 다른 바람이 있으니 이는 무엇이람? 그것은 바로 희망이라는 바람인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바람은 작지만 찐한 느낌의 보람을 가져오기도 하고 큰 것 같지만 유명무실한 결과를 낳기고 한다. 태어나서 소견머리가 들라치면 그 때부터 서서히 나타나는 바람인 희망과 꿈. 소망에서 야망으로 바뀌기도 하고 소소한 행복에서 부푼 꿈이 합세하여 낭패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그런 바람.

 

무지한 인간의 삶 속에서 복잡하게 얽섞인 문화. 찬란하게 빛나는 경제 속에서 몰아치는 흙먼지나 미세먼지를 몰고 드는 바람보다는 안방과 찻집 그리고 이웃하는 사랑방에 불어 든 작은 소망이 낳은 소소한 행복이 온 동네 온 나라 온 세상에 널리 불어드는 그런 바람의 바람을 만나보니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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