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비밀 (2)

 

이 마을에서의 안온한 생활에 젖어 범인을 찾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일까?

그건 아니다.

할매가 이 마을로 들어 올 무렵 할매는 많은 재산을 모두 처분해 버리고 자신은 스스로 무일푼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 사실은 범인을 찾았기 때문에 그 범인에게 복수를 하고 자신은 아무런 미련도 없이 생을 마감하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들 곁으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떠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할매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았고, 범인의 옆집으로 이사를 와서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복수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보기에는 할매가 너무 많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다.

그 동안 할매의 행적은 복수를 하기위한 행동은 절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할매의 행동은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갚는 행동이라고 보아야 더 합당하다.

지서는 그 해답을 찾으려고 하였지만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할매가 여자의 몸으로 알지도 못하는 범인을 찾아다니는 것이 안쓰러웠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신이 범인이라고 실토할 수는 없다.

원한이 맺힌 할매에게 속죄할 수도 없다.

자신이 젊은 시절 교통사고를 내어 3명이나 죽인 사실은 자신 말고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것은 처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실로서 자신만 알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이다.

다행히 할매의 지난 10여 년간의 행적이나 행동으로 보아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결국 지서의 결론은 농촌 생활의 안온함에 젖었거나 지서의 정성어린 후대(厚待)에 범인 찾기를 포기하고 이 마을에서 안주를 결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외에는 할매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할매가 그런 결정을 하기까지 태완이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식을 모두 잃어버린 할매에게 어린 태완이는 자식같이 여겨졌을 것이고 태완이에게 정을 붙이고 잘 키움으로서 또 다른 심리적 안정감이나 보람을 찾았음에 분명하다.

이제 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속죄는 할매가 이 동네에서 편안히 여생을 마칠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게 살펴주고, 도와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다.

 

3.

동생은 형제의 정으로서 언니를 설득해 보고 그래도 언니가 거절하면 설득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결국 언니의 인생은 언니의 것이므로 언니가 바른 선택을 하던 잘못된 선택을 하던 그것은 언니의 몫으로서 그 선택을 존중해 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형제들의 뜻이라고 하였다.

동생의 말이 끝나자 맑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지면서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린다.

 

지서는 소나기를 핑계 삼아 할매 동생과의 대화를 끝내고 할매의 집으로 동생을 안내하면서 할매를 기다리라고 하였다

헤어 지면서 동생은 지서에게 이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것으로 해 달라고 부탁한다.

지서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저 비가 공연히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먹구름이 다가와 자신을, 자신의 집을 덮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비를 흠씬 맞고 돌아 온 할매는 그날 밤 동생과 모처럼 하룻밤을 같이 보내었고, 이튿날 아침 일찍 동생은 언니만 내 버려 둔 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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