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퍼진 양지쪽 논두렁에 모자에 업 수건까지 눌러쓴 아낙의 손에는 벌써 봄을 도려내는 귀여운 칼이 닭 부리 되어 짙은 쑥 냄새 맡으며 한나절을 쪼고 있다. 천연염색 집이라 농약은 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 지난해에 다녀갔던 그 팀인가 싶다. 세 사람이 동과 서로 나뉘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열심이다. 성급한 나는 괜히 두릅 눈 튀기를 기다리며 며칠이나 더 기다려야할지 친구 아들에게 묻기도 한 작년이 생각났다. 
 무척이나 봄 향기를 기다리는 듯. 아니, 어쩌면 봄에 느끼는 포근함도 그렇지만 더욱 그리운 것은 몇 해 전 멀리 간 친구가 한 이야기가 그렇다. 
 "아요, 우리 아이들 다 키워 장가보내고 나면 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세계여행이나 한 번 가자. 촌에 처박혀서 날마다 이렇게 일만 해가지고 우찌 살겠노? " 하며 즐거운 넋두리를 했던 그 때가 생각났다.
 그래 그렇다. 자식들 성공시켜 놓고 여유를 갖는다는 것. 얼마나 좋을 일인가. 하지만 그 자식이 부모 생각대로 잘 자라 주고 스스로 먹고 살 걱정 없이 살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학교 다닐 때나 결혼시켜 놓은 후나 끝없는 뒷바라지와 관심에 촌각도 걱정 놓을 시간이 없으니 이를 어쩔꼬? 그냥 살든지 말든지 내 버려 둬버릴까. 하는 마음도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 이제는 조용히 지켜보다 답답한 마음에 재촉하다 지쳐 잔소리를 하고 싶어도 하기가 싫다. 언제나 몇 살이나 되어야 제대로 살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벽에 못 박아 매어 둔 저 시계에다 코뚜레라도 꿰어 거꾸로 몰고 다닐 수만 있다면 그러고 다닐까도 싶다. 그럼 나도 젊은 시절로 되돌아가겠지.
 요즘은 내가 당시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식구는 많고 재정적 여유가 없어 마음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면 아들들 흉을 보며 "아이고 저놈의 자식들 언제 좀 잘 살 수 있겠노?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자식들이 이 모양 이 꼴로 사는지 모르겠다."하시며 넋두리 하시던 때가 생각난다. 
 "아이구 그래, 차라리 그냥 못 본체, 모르는 체, 관심 없는 체 하고 살자. 잘 살고 못 사는 것도 제 팔잔데." 하시며 담배연기를 푸욱 뿜어내시던 당시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 때는 나도 이렇게 생각 했다.
 "아부지는? 나는 뭐하는 자식인지 모르겠네요. 위에 형님들 놔두고 아부지 밑에서 그것도 군대생활 일 년 남은 자식, 엄마 아프다고 결혼시켜 많은 식구 새 며느리 밥시키고 일시키고 별스런 희망도 없이 집안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사는 아들. 내가 자동차 보조 타이어인가요?" 그러던 내가 지금은 당시의 아버지가 된 것 같다. 물론 아버지가 그리도 걱정하시던  자식들 당신이 별세한 후에야 모두 성공해 살고 있지만.
 나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든다. 내가 이 세상 떠나고 나면 잘 살 거라고. 그 때는 작은 효심이라도 생길 거라고. 지켜보던 시계, 못 박혀 매여 있는 시계 이젠 그냥 보고 지내자 시침 분침이 어디로 가리키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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