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 류준열
수필가, 여행칼럼니스터
천상병문학제추진위원장
직품집 무명그림자 외
전 중등교장
화산재 걷어내고 옛 면모 웅장하게 드러낸 고도 폼페이 거리 석양 마주하며 거닐다.
오늘 폼페이에서 내 발걸음 바로 아래 깊은 땅속 액체 불덩어리 이글거리며 용솟음 치고 있다는 알음알이 체감하며,
불덩어리 액체 둘러싼 요동하며 떠다니는 땅거죽을 밟으며 걷다.
큰 길과 소로 따라서 귀족들이 산 화려한 건물과 평민이 산 소박한 집, 인간이 만든 신전(神殿) 사이로
빵 만들었던 집, 호화로운 목욕탕, 정원과 분수, 갖가지 살림살이,
이슥하게 어둔 밤 찾아가던 홍등가,
애처로운 자세로 굳어진 숱한 인간 화석, 벽화와 조각들,
이천 년 전 과거의 부귀와 영화 흔적 앞에서 깊이 묻혔던 세월 날카롭게 파고들며,
발길 앞 툭툭 채이며 부딪히고 있다.
붉게 용솟음치는 자연 앞에서, 찾아드는 죽음 앞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욕심 앞에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빈부귀천 가리지 않고 오직 평등한, 삶은 다 그렇고 그런 것임을 폼페이는 침묵으로 말하고 있다.
홍등가 집 천장 춘화도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 꿰뚫으며 부끄럼 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폼페이는 서기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 땅 속에 묻혀 있다가 1748년부터 본격 발굴. 지금은 옛 시가의 거의 절반 정도 발굴.
[서유럽 7개국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