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제국 거란과 맞선 진주인 하공진(河拱辰) 충절의 효시 경절사와 관찰사 집무실 선화당 
초원제국 거란과 맞선 진주인 하공진(河拱辰) 충절의 효시 경절사와 관찰사 집무실 선화당 
  • 경남연합신문
  • 승인 2021.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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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晉州城)안 경상도 관찰사 집무실 선화당(宣化堂)’복원
충절의 효시 진주정신을 상징하는 경절사 존치문제
진양하씨대종회 하경철 회장
진양하씨대종회 하경철 회장

충절의 고을, 충성스럽고 절개를 지키는 사람이 많은 고을 각 고을마다 자기 고을을 충절의 고향으로 내 세우고자 노력하는데, 충절로는 진주만한 곳이 드물 것이다.

 

그래서 충절은 곧 진주정신의 바탕이 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충절을 이야기하면 의례히 임진왜란 중인 계사(1593)7만 군관민의 진주성 순절과 의기 논개(論介)가 전부인양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사실 진주의 충절은 기록이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자면 고려 전기 현종(顯宗) 때 거란으로부터 나라를 지킨 하공진(河拱辰)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공진 장군은 1010년 거란의 2차 침략 때 거란 장수를 만나 담판을 벌여 자신이 볼모로 되는 조건으로 거란군을 철수하게 하였다. 대신 거란에 압송되어 가서 거란족이 세운 요(遼)나라 성종(聖宗)의 온갖 회유와 협박을 받았으나 "감히 우리 고려에 두 마음을 둘 수 없소"라며 끝까지 저항하다가 살해되었다. 거란 사람들이 다투어 그 심장과 간을 씹어 먹었다 한다.
강민첨 장군은 1019년 거란의 3차 침입을 막아내는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역시 공신에 봉해져 화상이 공신각에 걸리고 태자태부(太子太傅)에 추증되었고 자손들을 등용하였다.
진양정씨의 시조 정신열(鄭臣烈)도 병조판서로서 거란의 침략을 막아냈다.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는 진주의 대표적인 대성인 강씨, 하씨, 정씨 가문의 인물들이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진주를 대표적인 충절의 고향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공진의 출생지가 지금의 진주성 경내로 알려져 거기에 사적비를 세우고 그를 제사 지내는 경절사(擎節祠)를 그 옆으로 옮겨와 세워 해마다 제사를 올리고 있다.

그동안 우리들은 하공진 장군을 단순한 진양하씨 문중의 시조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공진 장군은 여·요 전쟁당시 초원제국의 대정복자 요나라의 성종과 맞서 고려의 기상과 충절을 보여준 영원불멸의 진주 정신의 표상이었든 것이다. 
진주 정신이란 누가 뭐래도 충절이다. 국내 많은 사람들은 16세기 동아시아 최대의 혈전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대첩을 진주의 상징처럼 떠올리곤 한다.

그러니 진주 정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다 보면 그보다 훨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1세기 고려 현종 때에 진주 출신 하공진 장군에 이른다. 10세기 후반과 11세기 초기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는 초원 제국의 대정복자 요나라(거란)의 성종(야율문수노)이 주도했다. 
거란의 성종은 동아시아 패권의 한 축이었던 고려를 정복하고자 전쟁을 일으켰고 서희의 담판으로 유명한 1차 거란전쟁에 이어 2차 전쟁을 일으켰다. 
이때 역전의 용사 형부낭중 양규, 구국의 영웅 명재상 강감찬과 함께 고려의 기상과 진주의 충절 정신으로 대활약한 이가 있으니 바로 그가 진주 출신 충절공 하공진 장군이다. 
충절공은 단순히 현대인들에게 진주 하씨의 시조로만 알려져 있지만 시대적 영웅으로서 재조명 받을 필요가 있다.
고려의 정사 '고려사'와 거란의 역사서인 '요사'에 의하면 거란이 쳐들어오자 고려 왕실은 항복을 고민하다가 강감찬의 의견으로 전략적 철수를 감행한다. 당시 하공진 장군은 군사 20여 명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피난 중이던 현종을 뒤따라가 양주에서 거란군의 철수 교섭을 자청했다. 그는 현종의 사절로 요 성종을 만나 현종의 친정과 더불어 스스로 볼모가 되는 조건으로 군대를 철수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돌아가는 거란군을 양규가 군사를 이끌고 공격했고 거란군은 수많은 피해를 입고 돌아갔다.
거란에 볼모로 잡혀간 하공진 장군은 수도 연경에서 여러 번 고려로 탈출을 감행하다가 이 사실이 탄로나 성종에 의해 모진 고문과 회유를 받게 된다. 하지만 나라에 대한 굳은 충정으로 완강히 거절했고 이를 비웃듯이 모욕스러운 언행으로 성종을 격분시켰다, 분노한 성종은 참형을 내려 끝내 하공진 장군은 타국에서 순국하게 됐다.
요나라 성종의 회유를 끝내 거부하다 적국에서 순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기 1012년 고려 현종은 충절공의 후손에게 상을 내려 그의 충절을 기리게 했다. 이러한 하공진 장군의 구국을 위한 희생이 있었기에 고려는 다시 재정비할 시간을 벌 수 있었으며 거란과의 3차 전쟁에서 귀주대첩을 끝으로 승리하게 됐다. 
거란과의 전쟁이 당시 동아시아 패권 싸움에서 매우 귀중한 고려의 승리였던 만큼 반드시 하공진 장군의 숭고한 희생과 충절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진주의 정체성과 진주정신은 나라를 구하고 목숨바친 진주출신 하공진장군이 그 효시(嚆矢)이다."충절(忠節)의 도시 진주(晋州)" 숭칭(崇稱)이 시작 된 것이다.
뒤 이어 강민첨장군, 하경복장군, 김시민 장군, 의기 논개, 진주대첩과 계사년 7만 민관군의 순의(殉義),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등으로 이어진 역사가 근거다.

이러한 가운데 진주시는 진주성내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 안에 있었던 관찰사 집무실인 선화당(宣化堂) 복원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관찰사 복원을 위한 기본계획 및 타당성 조사 용역에 이어 문화재 주변 현상 변경 허가를 추진하고 있다. 이어 관찰사 터(觀察使 址)에 일부 맞물려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고 있는 청계서원(淸溪書院)과 경절사(擎節祠) 보상철거 또는 이전과 관찰사 복원설계 등을 거쳐 복원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절사 존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는 진양하씨대종회 하병옥 사무국장과 본지 하영갑 논설위원
경절사 존치 당위성을 설명하고 있는 진양하씨대종회 하병옥 사무국장과 본지 하영갑 논설위원

 

선화당의 터는 병마절도사(병사兵使)의 집무실이었던 운주헌(運籌軒)의 자리로 290년 이상 존속했던 경상우병영이 1895년 을미개혁(乙未改革)으로 혁파되면서 운주헌의 현판이 내려졌고, 1896년 경상도가 남북으로 분리되었을 때 선화당으로 이름이 바꾸어져 최초로 경남도청 청사가 되었다. 당시 관찰사 집무실은 현재 성내 북장대 남쪽 지대에 있었는데 지금은 불에 타 사라지고 없다.

그런데 지금 1896년부터 1910년까지 있었던 경상감영의 선화당(宣化堂) 건물을 복원하는 계획을 현 시장의 공약사항으로 추진하면서 경절사를 옮겨야 한다는 이야기가 거론되고 있어 진양하씨, 진양정씨 문중과 진주시, 문화재청 등과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선화당을 복원하는 것도 권장할 만한 일이지만, 목숨을 걸고 나라를 구한 분의 사당을 굳이 다른 데로 옮기면서 그 자리에 선화당을 세울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진주 충절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하공진 장군의 사당을 조선 말기에 생겨 잠시 존재했던 선화당 때문에 옮긴다는 것은 가치가 전도된 것이다.

역사와 충절의 도시를 지향하는 진주시는 과연 11세기 동아시아 국제적 영웅 하공진 장군의 정신을 짓밟으려 하는 것인지?
충절을 상징하는 경절사는 일개 문중의 사당이 아니고 진주정신 충절을 상징한다. 
때문에 역사와 전통에 따라 반드시 현 위치에 존재해야 하며 오히려 국가로부터 지원과 관리로 현대인들과 후세에 충절의 정신을 전할 진주의 랜드 마크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경절사 내 충의당 성금을 낸 문중의 헌성록비
경절사 내 충의당 성금을 낸 문중의 헌성록비

 

문화재청과 진주시는 나라를 구하고 고장을 빛내며 발전시켜온 선현들의 위업과 얼(精神)을 재조명하고 현창하기 위하여 추진하는 선화당 복원사업은 권장할 일이겠으나, 복원사업과정에서 충절의 진주를 상징하는 경절사를 이전하는 등 진주민의 자존과 자긍심, 그리고 진주정신이 훼손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될 것이다.
  [정리: 편집국장 류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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