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호부터 14호까지 촉석루에 걸려있는 한시(漢詩) 현판의 아홉 수 중에 정을보(鄭乙輔)와 하연(河演), 그리고 하진(河溍)의 작품을 그들의 행장(行狀)과 함께 감상해 보았다. 이 번 호에서는 본관이 역시 진주이며, 고려 말에 대학자였던 정이오(鄭以吾1347∼1434)의 한시 현판의 작품 한 수와 현판에 걸리지 않은 또 하나의 유명 작품을 감상하기로 한다.⌟

 

興廢相尋直待今-흥폐가 갈마들어 지금을 기다렸나

層嶺高閣半空臨-층암절벽 높은 누각 허공에 다다랐네.

山從野外連還斷-들판 건너 산줄기는 이어졌다 끊어지고

江到樓前闊復深-누각 앞에 이른 강은 넓어지고 깊어지네.

白雪陽春仙妓唱-백설양춘은 선녀 같은 기녀의 노래요

光風霽月使君心-광풍제월은 진주 목사의 심사로다.

當時古事無人識-당시의 옛 일을 아는 사람 없는데

倦客歸來空獨吟-고달픈 길손 돌아와 속절없이 읊조리네.

 

상기 시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소개가 된 것인데, 원제는 촉석루이며, 두 수 가운데 둘째 수이다. 예전에는 두 수가 함께 쓰인 시판이 걸려 있었는데, 중건 이후에 첫째 시는 뺀 것이다. 이 시에는 시문이 딸려 있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실린 서문에 의하면 본래 14131차 중건 당시 중건을 주도했던 하륜이 정이오에게 시를 지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1418년에 이르러서야 세종의 태실지(胎室地) 선정을 위해 진양에 내려오는 길에 이 시를 지었다는 것이다.

작자는 왜적의 침입을 당하고 왕조가 바뀌는 사태를 겪고, 일흔이 넘은 나이에 고향에 잠시 들러 지친 몸을 쉬면서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시 형식을 살펴보면 경물 묘사에서 점층법(漸層法)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먼 곳에서부터 점점 가까운 곳으로 초점을 집약시키는 것이다. 먼저 멀리 보이는 산과 그 안쪽의 들판, 그리고 강물이 그 사이를 흘러와서 촉석루 아래에 이른다. 그 촉석루에서는 기녀들이 백설양춘곡이라는 고상한 노래를 부르고, 원님은 광풍제월처럼 넓고 쾌활한 마음으로 그 노래를 듣고 있다. 작자는 그 원님의 마음속까지 들어갔다 나온 듯이 원님의 심사를 세세하게 드러내 놓았다.

두 수 가운데 촉석루에 걸리지 않은 첫 번째 시는 다음과 같다.

 

俯仰人間成古今-살다 보니 인간사 고금 일이 되었는데

奇觀不盡此登臨-여기 올라 바라보니 좋은 경관 다함없네.

西來二水藍光合-서쪽에서 온 두 갈래 물 쪽빛으로 합해지고

南去群峰黛色深-남으로 뻗은 뭇 봉오리 푸른 빛 깊어졌다.

隨世行藏工部嘆-세상 따라 진퇴함은 두보의 탄식이요

與民憂樂范公心-백성과 고락을 함께함은 범중엄의 마음이라.

隔江舊里風烟在-강 건너 옛 마을엔 풍광엔 그대론가

京輦當年幾越吟-서울 살 땐 얼마나 고향을 노래했던가.

 

이 작품도 역시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감회를 적고 있다. 특히 제6구에서는 송나라 범중엄(范仲淹)악양루기(岳陽樓記)에서 설파한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는 것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후에 즐거워한다.”는 말을 떠올리면서, 악양루와 촉석루에 면면히 흐르는 애민 정신을 반추(反芻: 되풀이하여 음미하거나 생각하는 것)하고 있다.

이어서 다음 호에서는 촉석루의 북쪽 오른편 두 번째에 시판에 걸려 있는 한몽삼(韓夢參15891662)의 작품을 감상하고자 한다.

 

저작권자 © 경남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