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박재성

훈민정음기념사업회 이사장

훈민정음탑건립 상임조직위원장

한문교육학박사

대한국인에게 한민족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를 꼽으라면 아마도 누구나 서슴없이 훈민정음이라고 대답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는 훈민정음이 창제된 지 57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훈민정음 창제자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다. 물과 공기처럼 당연한 듯이 쓰고 있는 우리의 위대한 문자 훈민정음을 그 누구는 세종대왕 한 사람의 머리에서 이렇게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원리를 가진 문자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비틀어 대고, 어떤 이는 신미 대사가 창제 작업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생각은 자유다. 그러나 그 자유스러움도 지나치면 역사 왜곡이 되는 것이고, 그 왜곡은 자신만의 사유의 문제를 넘어서 타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끼친다는 점 때문에 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대함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는 ‘뛰어나고 훌륭함’이다. 세종대왕 사후에 500여 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새롭게 발견된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한 또 다른 위대함의 발견, 그것은 새로 만든 스물여덟 자의 실체에 관한 것이었다. 황제의 나라에 대해 사대(事大)와 공맹의 진리를 빌미 삼아 왕권 강화를 견제하는 유신들의 압박에 시달리고 평생을 괴롭힌 질병에 고통받고, 사랑하는 아내의 상처조차 걷어줄 수 없는 지아비였기에 세종은 더 위대한 임금으로 기억되는지도 모르겠다.

2019년 여름에 상영되었던 ‘나랏말싸미’라는 국내 영화는 개봉할 당시의 여름 날씨보다 더 격렬한 논쟁의 불을 지폈던 것 같다. 영화는 왕권이 가장 강력한 시기였던 조선 4대 왕 세종이 신하들이나 승려들에게 하대받고, 무례한 대우를 받는 모습으로 왜곡하는 것도 모자라 훈민정음을 신미 승려의 창제설로 몰아간다. 게다가 홍보 포스터에는 “역사가 담지 못한 한글의 시작”이라는 문구를 넣어두어 잘못된 정보로 인하여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잘 모르는 어린 학생이나 외국인이 본다면 훈민정음은 세종이 창제한 문자가 아니라 신미라는 승려가 창제한 것이 되어 버린다.

110분간 상영된 이 영화에서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왜곡하고 뒤틀어 버린 곳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다음 대사가 아닌가 싶다.

마침내 훈민정음이 완성되고 세종은 서문을 짓는다.

‘나랏말ᄊᆞ미듀ᇰ귁에달아문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중략)~내이ᄅᆞᆯ윙ᄒᆞ야어엿비너겨새로스믈여듧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뼌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몇 글자냐?’ ‘백아홉 글자이옵니다.’ ‘한 글자 빼라’ 그래서 108배를 의미하게 하여서 신미에게 보은하겠다는 부분...

훈민정음 해례본의 세종이 직접 작성한 서문은 한문으로 쓰였으며 54자이다. 그리고 ‘나랏말싸미~~’로 알려진 훈민정음 서문은 세종 사후 세조 때 간행된 언해본의 서문이다. 그래서 임금 사후에 올려진 묘호 ‘세종어제훈민정음’이라는 제목이 붙게 되고 서문은 언문 108자로 풀이된 것이다.

‘나랏말싸미’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관객의 호응을 받지 못한 탓에 빠르게 스크린에서 내려졌지만, 북미, 일본, 대만 등지에서 개봉되었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다루었던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 대한 허구가 실제로 정사(正史)인 것처럼 잘못 알려지거나, 의도적인 왜곡의 소재로 사용될 수 있기에 염려가 되는 데도 한글학회나 국어학회 혹은 역사학회에서 정식으로 의견을 제시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뒤틀린 훈민정음을 보면서 지식을 독점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권력 또한 독점하고자 했던 유신들에 맞서 ‘모든 백성이 문자를 쉽게 익혀서 읽고 쓰는 나라’를 꿈꿨던 세종대왕의 이상을 담아서 세상에서 가장 쉽고 가장 아름다운 문자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을 누구나 쉽게 만나 보게 하려고 훈민정음이 탄생하기까지 그 과정에 녹아있는 역사적 요소를 시각화시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소설로 만나는 세종실록 속 훈민정음> 집필 작업에 임했다. 조선 초기 집현전의 역할과 인재 등용은 물론, 새롭게 탄생한 조선의 문자 속에 기하학, 천문학, 철학까지 담겨있는 훈민정음의 점과 선, 면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역사의 실타래를 입체적으로 풀어가면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 미적 아름다움을 살려보려고 노력했다고 자평하면서 많은 이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과욕을 부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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