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풀이

지난 11호부터 18호까지는 촉석루 현판의 아홉 수 중에 여덟 번째 작품으로 강렴(姜濂)의 작품을 감상했다. 본 호에서는 촉석루 남쪽으로 가장 왼편에 걸려있는 농포(農圃) 정문부(鄭文孚15651624)의 현판 시()와 남장대(南將臺) 현판의 바로 왼쪽에 걸려있는 우당(憂堂) 박융(朴融13471428)의 작품을 함께 감상하기로 한다.

 

정문부는 해주 정씨로, 1588년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591년에 함경북도 병마평사가 되었는데,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때 회령의 국경인(鞠景仁) 등이 반란하여 임해군(臨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두 왕자를 호종(護從)한 황정욱(黃廷彧)과 황혁(黃赫) 부자, 그리고 김귀영(金貴榮) 등을 잡아 적에게 넘기고 투항하였다. 그러자 정문부는 격분하여 관민 합작의 의병대장이 되어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반란세력을 토벌하였다. 이에 놀란 왜적이 길주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닫고 방어하였는데, 정문부는 왜적을 고립시키고 지원 세력을 차단하여 큰 피해를 입혔다. 이 전투를 일러 북관대첩(北關大捷)이라고 하고, 그 전말을 소상히 기록한 전승비를 북관대첩비라고 한다. 길주군에 있던 이 비석은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이 일본으로 가져가서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하였는데, 2005년에 한국으로 반환되었다. 그리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를 하고, 이듬해에 북한으로 인도하여 원래 자리인 김책시에 다시 세워졌고, 우리나라에는 복제품을 만들어 경복궁에 전시하고 있다. 정문부는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던 끝에 죽었으며, 뒤에 신원이 회복되어 좌찬성에 추증되었다.

 

龍歲兵焚捲八區(용세병분권팔구)-임진년 병화가 팔도를 휩쓸 적에

魚殃最慘此城樓(어앙최참차성루)-무고한 재앙 이 성루에 가장 처참하였어라.

石非可轉仍成矗(석비가전잉성촉)-굴릴 수 없는 돌이 이내 촉석 이뤘는데

江亦何心自在流(강역하심자재류)-강은 또한 무슨 맘에 절로 절로 흐르는가.

起廢神將人共力(기폐신장인공력)-폐허를 일으킴에 신과 사람 힘 모으고

凌虛天與地同浮(능허천여지동부)-허공에 솟아오르니 천지가 함께 떴네.

須知幕府經營手(수지막부경영수)-모름지기 알리라 막부의 경영 솜씨

壯麗非徒鎭(장려비도진일주)一州-장려함이 한 고을을 진압할 뿐 아님을.

 

상기 시의 원제는 차촉석루운(次矗石樓韻)이다. 정문부는 16187월에 창원 부사로 임명을 받았는데, 이 해는 바로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촉석루의 중건이 완성된 시기였다. 그러니까 이 시는 아마도 중건이 마무리되는 시기, 혹은 그 이후에 지어졌을 것이다. 북쪽 끝 함경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작가는 남쪽 끝 진주에서 전란으로 불타버린 촉석루를 다시 일으켜 세운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웅장한 촉석루의 모습을 잘 전달하면서, 그로 인하여 자부심을 회복하게 하려는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다음은 촉석루 현판의 마지막 작품으로, 남장대 현판의 바로 왼쪽에 걸려있는 우당(憂堂) 박융(朴融)의 작품을 감상하기로 한다. 박융의 자는 유명(惟明)이고 본관은 밀양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은 군수에 이르렀다.

 

晉山形勝冠南區-진산의 형승이 남쪽에서 으뜸인데

況復臨江有此樓-하물며 강가에 이 누각이 있음에랴.

列岫層巖成活畵-펼쳐진 산 층암절벽 그대로 그림이요

茂林脩竹傍淸流-무성한 숲 긴 대나무 맑은 물 곁에 있네.

靑嵐髣髴屛間起-푸르른 산 기운은 병풍 사이에서 이는 듯

白鳥依稀鏡裡浮-흰 새는 어렴풋이 거울 속에 떠 있는 듯

已識地靈生俊傑-땅이 영험하여 준걸난 줄 알겠노니

盛朝相繼薛居州-성조에 대대로 착한 신하 끊이잖고 나타났네.

 

진주의 경치가 남쪽 지방에서 으뜸인데, 특히 강가에 임해있는 촉석루가 있어 더욱 좋다는 것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멧부리들은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무성한 나무와 죽죽 뻗은 대나무가 맑은 강을 따라 우거져 있다. 프르른 산 기운은 방안까지 들어오고, 새들은 거울 같은 강물 위에 떠 있다. 이런 아름다운 환경에서 인물도 많이 배출되어, 조정에서 임금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진주에 대한 자긍심이 가득차 있는 시이다. 원문 마지막 구의 설거주(薛居州)’는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의 한 신하 이름이다. 孟子<滕文公()>설거주처럼 착한 신하가 왕 곁에 많이 있으면 왕이 훌륭한 정치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 실려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11호부터 19호에 이르기 까지 촉석루 현판에 걸려있는 한시(漢詩) 아홉 수를 그들 작가들의 행장과 함께 작품들을 모두 감상해 보았다. 다음 호부터는 역시 촉석루내의 현판으로 걸려있는 기문(記文)들을 살피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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