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선조들이 건물을 지을 때 기준으로 삼은 좌향 개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듯, 우리 문화재를 볼 때는 선조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안다고 믿는 것 가운데 편견과 착각이 얼마나 많은지 의심해 본 적이 있는가?

문화재 현장에서 만나는 가장 흔한 착오 가운데 하나는 왼쪽 오른쪽과 관련된 ‘좌향(坐向)’시각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좌향 개념을 언급할 때 대부분 관찰자 중심의 서양시각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서양시각으로 우리 문화재를 보면 위치나 명칭들이 선조들의 의도와 어긋난 사실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은 이런 이야기를 한 번 해 볼까 한다.

우리는 사물을 바라볼 때 좌(坐)를 중심으로 생각한다. 여기에서 좌(坐)란 내가 앉아 있는 자리이다. 즉, 내가 중심이 된다. 내가 중심이 되어 앞을 바라볼 때 그 방향을 향(向)이라 한다. 그러므로, ‘좌향(坐向)’이란 내가 앉아서 앞을 바라보는 시각을 표현한 단어이며, 일명 주인시각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와는 반대로 내 앞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있다. 이를 손님시각 혹은 서양시각이라고도 한다.

우리 문화재의 대부분은 주인시각을 바탕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때 주인공은 궁궐에서는 왕과 왕비, 서원에서는 원장, 사찰에서는 부처나 보살, 조선 왕릉에서는 돌아가신 왕이나 왕비가 된다.

고대 동양에서 왕이 나라를 세우고 도성 계획을 수립할 때 지켜야 할 주요 원칙이 있다. 그것이 ‘좌묘우사(左廟右社)’이다. 이는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짓고,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건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은 경복궁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임금은 남면해야 한다는 유교적 이념을 바탕으로 조성된 경복궁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왕의 시선이 좌우의 기준이 된다. 오늘날 이런 원칙을 외면한 채 세종로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경복궁을 바라보면서 왼쪽에는 사직단이, 오른쪽에는 종묘가 위치한다는 식의 문화재 해설을 하는 언론 매체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잘못된 시각이다.

한국사 교과서를 펼쳐보면 좌도 우도, 좌수영 우수영, 좌수사 우수사라는 지명이나 관직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승진한 뒤 전라좌수영에 부임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 때 좌우를 가름하는 것은 위 내용과 마찬가지로 정궁(正宮) 경복궁의 근정전 용상에 앉아서 남쪽을 바라보는 임금의 시각이 그 기준이 된다. 그래서 지도상 전라좌수영이 있는 도시는 해남이 아니고 여수가 된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조선왕릉 서오릉에 가면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가 누워 계시는 홍릉(弘陵)을 만날 수 있다. 홍릉은 ‘우허제(右虛制)’가 적용된 유일한 왕릉이다. ‘우허제’란 왕비가 먼저 승하(昇遐)하여 능을 조성할 경우 왕이 훗날 왕비와 함께 묻히기 위하여 능의 오른쪽을 비워 두는 것을 말한다. 이때 능의 오른쪽이란 돌아가신 분의 봉분에서 정자각이나 홍살문 쪽을 바라볼 때 오른쪽이란 의미이다.

사찰의 경우에도 좌우의 개념은 똑같이 적용된다. 일반적으로 불교 신도들은 법당에서 중앙의 부처와 양 옆에 계시는 두 분 보살을 친견하게 된다. 이 두 분의 보살을 협시보살이라 부르며, 부처와 두 분의 보살을 합쳐 삼존불이라 한다. 이런 경우, 좌협시보살의 위치는 예배를 드리는 신도의 입장이 아니고, 부처가 좌정해 계시는 위치에서 봤을 때 왼쪽이란 뜻이다. 만약 대웅전에서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정해 계시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왼쪽에 계시는 보살이 문수보살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재 현장에서 간행되는 안내문을 세밀하게 검토해 보면 좌향 개념을 잘못 서술한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안내문 내용을 수정하는 작업도 필요하지만 더욱 더 시급한 문제는 올바른 문화재 교육이 실행되어 정착되는 것이다. 이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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