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에 담긴 ‘상대향’의 비밀

 

 

우리 문화재에는 무언가가 있다. 그 무엇은 선조들의 생각이 반영된 우리의 전통시각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보이게 된다. 우리 문화재를 연구할 때 어려움에 봉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선조들의 생각은 외면한 채 주어진 현상을 서구시각과 과학의 잣대로만 분석하고 판단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과학적 사고방식과 서구적 시각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문화재를 조명하고자 할 때, 과학과 서구적 시각은 오히려 커다란 모순을 일으킨다. 오늘은 우리의 전통시각에 바탕을 둔 ‘상대향’ 원리를 알아보고자 한다.

해가 뜨는 방향을 동쪽이라 하고, 지는 방향을 서쪽이라 한다. 북극성이 떠 있는 방향은 북쪽이며 그 반대쪽은 남쪽이다. 이런 식의 방향 설정을 ‘절대향’이라고 한다. 한편 조형물을 배치할 때 실제 방위와는 무관하게 주체를 북쪽으로 설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상대향’이라고 한다. 우리 문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대향 원리에 입각해서 조성된 경우가 상당히 많다. 따라서 이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 선조들과 심도있는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상대향 원리의 핵심은 주체를 북쪽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이때 실제 방위는 무시된다. 이렇게 상대향 북쪽이 정해지면 이를 기준으로 왼쪽은 동쪽이 되고 오른쪽은 반드시 서쪽이 된다. 이 원칙은 궁궐, 서원, 사찰, 왕릉, 제례의식 등 우리 문화의 많은 부분에 적용이 되는데 우리는 이 부분을 가르치거나 배운 적이 없다.

‘상대향’을 적용시킨 대표적 문화재 가운데 하나가 대구에 있는 도동서원이다. 도동서원은 초기 터 잡기를 한 후 건물을 세울 때 북향으로 배치했다. 따라서 사당과 강당은 모두 남쪽에 있으면서 북향을 취하고 있다. 물론 기숙사 역할을 하는 동재도 실제는 서쪽에 있고 서재는 동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남쪽에 있는 사당 및 강당은 상대향 북쪽에 해당되며, 강당 앞 서쪽에 위치한 기숙사는 서재라 하지 않고 상대향 동재라 부른다. 도동서원은 조선 최고의 도학자 김굉필을 배향한 서원이며, 그 설계는 조선의 뛰어난 예학자 가운데 한 분인 한강 정구가 담당했기에 유교예제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조선 왕릉의 곡장(무덤 뒤에 기와를 덮어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역시 상대향을 적용한 사례이다. 그러므로 동향을 했던 혹은 서향을 했던 어떤 왕릉일지라도 터진 곡장 쪽은 동쪽이나 서쪽이 아니라 반드시 남쪽이라는 상대향 해석이 붙게 된다. 어느 향으로 왕릉이 배치가 되어 있더라도 왕릉 곡장은 무조건 동,서,북쪽을 막고 있다고 일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상대향을 적용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상대향 원리를 모르면 안내판에 적힌 이런 설명을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조선의 제16대 임금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게 항복하러 나온 문은 서문이다. 이 서문의 현판글씨를 보면 ‘우익문’이라 적혀 있다. 서쪽을 오른쪽으로 보는 것 또한 상대향 시각을 적용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참고로 남한산성 동문의 이름은 ‘좌익문’이다.

상대향을 이해하고 있으면 오늘날 제사상 차릴 때 무척 편리하다. 거실 동서남북 벽면 가운데 가장 편리한 장소에 병풍을 치고 위패나 영정을 모시면 그곳이 상대향 북쪽이 된다. 그러면 위패나 영정을 중심으로 전면을 보았을 때 왼쪽은 동쪽, 오른쪽은 서쪽이 된다. 오늘날 초등학교 참고서에 등장하며, 심지어 조리기능장 시험문제에도 출제되는 ‘홍동백서 (붉은 색 과일인 대추는 동쪽에, 흰색 과일인 밤은 서쪽에 놓는다)’의 용어도 결국은 상대향에 근거를 둔 제사상 배치인 것이다.

사찰의 대웅전 앞 탑이 2개가 놓여 있을 때, 대웅전을 기준으로 전면 왼쪽에 있는 탑을 동탑, 오른쪽에 있는 탑을 서탑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상대향에 근거를 두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과학적 사고방식과 서구적 시각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 문화나 문화재를 해석할 때 과학과 서구시각이 아닌 우리 선조들의 혜안이 담긴 전통시각은 절대 필요하다. 김치가 냄새나서 김치를 먹지 않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고 김치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세계인들과 함께 김치를 즐길 때 진정한 세계화가 되듯이, 우리 선조들의 자연관과 철학이 담긴 문화재를 그들이 생각하는 의도대로 제대로 익힌 후 우리 문화를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는 것이 진정한 세계화의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소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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