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박사 정찬기오경상대학교 명예교수
교육학 박사 정찬기오
경상대학교 명예교수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함락은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도망치듯이 빠져나오는 미국의 초라한 모습에 동맹국들은 경악했다. 그리고 미국의 냉정한 결정에 동맹국들은 멍~해졌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을 비롯한 다른 동맹국은 다르다고 말하면서 미국의 철군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아프간 이후를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미국이 아프간을 떠나는 것에 대해서 가장 실망하는 나라는 중국과 러시아다. 그들은 미국이 계속 아프간에 매달려 있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은 카불사태에서 1975년의 사이공을 떠올렸다. 당시의 베트남(사이공) 패전이 던진 충격파는 훨씬 더 컸다. 미국에 대한 신뢰는 끝났다는 탄식이 이어졌고, 미국 사회 전반에 냉소주의가 만연했으며 지도층 역시 비관론에 빠졌다. 다음으로 무너질 나라는 어디냐에 촉각을 세웠다. 하지만 베트남의 굴욕 15년 후에 미국은 동서 냉전에서 승리하며 세계 유일의 최강 국가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동구권이 흔들리면서 소련 제국이 해체되었다. 이라크를 상대로 한 걸프전의 승리는 미국의 부활을 알리는 ‘불꽃 쇼’가 되었으며, 베트남의 치욕을 승화시켰다.

베트남 종전 이후 미국이 그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시간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레이건 행정부에 들어서 비로소 소련과의 전방위 전략 경쟁에 집중할 수 있었다. 허수아비 군대라고 조롱받던 미군을 재정비하고 ‘더러운 전쟁’이란 딱지가 붙은 비밀작전도 하였다. 전략가들은 소련 군사력의 실체를 정밀 분석하여 미소 간 숨겨진 국력의 차이까지 알아냈다. 이렇게 하여 미국은 상대적 우위를 찾았고 그것으로 소련의 열세나 약점을 공략할 수 있었다.

미국은 과도한 군비 지출로 허덕이던 소련에 전략핵의 증강과 전략 방위구상(SDI)과 같은 장기 경쟁전략을 들이밀면서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강요하였다. 그 결과는 소련을 경제적으로 탈진시켰다. 소련의 자업자득도 한몫하였다. 베트남 종전 이후 소련은 아프리카와 중미 지역에서 대리 세력들의 전쟁을 지원하며 과도한 확장에 나섰다. 그 정점이 아프간 침공이며, 10년 동안 수렁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바이든이 제시하고 있는 ‘아프간 이후’는 카불의 치욕으로부터 세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더 큰 싸움에 집중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그 상대는 새롭게 떠오르는 중국이다. 중국은 힘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다. ‘100년 만의 세력균형 대 변동기’라고 판단하고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영매체는 “아프간은 대만의 운명에 대한 전조”라고 생각하여 ‘대만 흔들기’에 나섰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대만의 차분한 반응이다. 이미 미국의 버림을 받았던 아픈 역사 때문에, 대만 정부는 물론 정치권 모두가 “대만은 스스로가 지켜야 한다.”라는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주시할만한 것이다.

아프간사태 이후 격화될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 한국은 계속 힘들게 될 것이 예상된다. ‘한미동맹과 한중협력의 조화’는 간단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은 일이다. 친 미국이냐? 친 중국이냐? 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정교하고 민첩한 생존전략이 필요하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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